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정부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참사 발생 24일 만에 희생자 가족이 처음 공식 입장을 밝힌 것으로, 숨진 158명 가운데 34명의 유족이 동참했다. 책임자 범위와 책임 규명 방법을 놓고 정치권 공방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피해 당사자인 희생자 가족 일부가 늦게나마 한목소리를 낸 것이라 사태 수습 방향에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희생자 사진이 담긴 액자나 휴대폰 화면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석한 유족들의 발언은 아물지 못한 슬픔으로 절절했다. 고 이상은(25)씨의 아버지는 "사랑하는 우리 딸을 먼저 보낸 미안함,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으로 원통해했고, 배우 이지한(34)씨의 어머니는 "볼이 너무 패어 있었고 배가 홀쭉했던"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참사로 인한 트라우마를 호소한 희생자 부친은 회견 도중 실신하기도 했다.
유족들은 대통령과 정부의 진정한 사과, 철저한 책임 규명, 피해자 참여가 보장된 진상 및 책임 규명, 피해자 소통 보장 및 인도적 지원, 희생자 추모시설 마련, 2차 가해 방지를 정부에 요구했다. 책임 규명 및 사과가 6가지 요구사항 가운데 절반을 차지하고, 전날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면담에서 유족들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에 대한 인사 조치를 요구한 점을 정부는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유족들이 서로 슬픔을 나누고 참사 수습 당국과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지적 역시 그렇다.
이날 대통령실 측은 특수본 수사 결과 국가 책임이 드러나면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유족과 부상자에게 일괄 배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피해자 측이 국가배상 청구소송에 나설 때 따르는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행여 국정조사 등 다른 진상규명 절차를 무마하려는 시도로 변질돼선 안 될 것이다. 정부가 피해 당사자들의 슬픔과 분노에 충분히 귀 기울여야 이들도 아픔을 극복하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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