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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현장 구급대원·경찰관도 비극의 피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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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희생자가) 살려달라는 소리도 못 지르고 제 팔뚝을 잡았는데... 그저 죄송합니다.”
서울 강북지역 소방서 소속 구급대원 A씨는 지난달 29일 밤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다. 구조팀 소속으로 당일 오후 11시 30분 현장에 도착해 다음날 아침까지 사고 수습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하지만 31일 연락이 닿은 그는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죄책감과 무력함. 요즘 A씨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감정이다. 그는 “서울시내 소방비상대응 3단계 발동은 처음”이라며 “이태원 골목처럼 밀집 공간에서 발생한 대형 압사 사고는 근무 10여 년 만에 처음 겪었다”고 했다. 아무런 장비도 쓰지 못하고 사람 더미에서 한 명씩 구조해야 하는 상황을 처음 맞닥뜨린 탓에 자꾸 스스로를 질책하게 됐다는 것이다.
대형 재난의 충격은 유족과 생존자, 일반 국민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구조 현장에서 땀을 흘렸던 구급대원도, 미비한 통제로 여론의 질타를 한 몸에 받는 현장 경찰관도 비극의 피해자다. 희생자들을 더 구하지 못했다는 죄의식과 아비규환이었던 사고 당시의 참혹한 잔상이 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현장에는 2,421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소방대원 507명, 구청 직원 800명, 경찰 1,100명 등이 힘을 합쳐 구조활동을 했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그래서 내색은 못 하지만, 2,000명이 넘는 이들 공무원도 고통을 안고 살고 있다. 당시 이태원에 출동했던 용산경찰서 지구대의 한 경찰관은 “험한 현장도 많이 갔었지만 이렇게 잔상이 짙게 남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샌드위치처럼 쌓여있는 사람들을 빼내야 했던 그곳은 지옥 그 자체였다”고 토로했다. 곁에서 울면서 심폐소생술(CPR)을 한 동료도 있었다.
현장 지원을 나갔던 서울 일선서 경찰관도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앞에서 한 명씩 끌어당겨서 구조하는 게 최선이었다”면서 “구조하는 순간에도 희생되신 분들이 많다는 게 괴롭고, 현장 촬영 영상, 폐쇄회로(CC)TV 영상에 그 과정이 다 담겨 있어 분석해야 하는 동료 직원도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각성을 인지한 경찰과 소방당국도 파견 직원을 위한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기존 ‘긴급심리지원제도’를 확대해 사고 현장에 파견된 경찰관들에게 의무 상담을 제공할 예정”이라며 “서울경찰청 차원에서 대상자를 추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방청 역시 현장에 동원된 구급대원들을 대상으로 ‘현장출동 소방대원 긴급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상담 자격증을 보유한 소방대원, 외부 전문상담사를 소방서에 파견하는 ‘찾아가는 심리 상담실’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용산소방서가 가장 시급해 우선적으로 상담사를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사회는 2014년 세월호 사태를 통해 국가적 비극은 ‘사회적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이어진다는 교훈을 얻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집단적 마음의 상처가 곪지 않도록 구성원 서로가 돌봐야 한다고 조언하는 까닭이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는 전날 낸 성명서에서 “개인도, 집단도 감당할 수 없는 참변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 고통을 숨기고 혼자 참으려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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