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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가 얼마 전 군에 입대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몇 년 전 신체검사를 다녀온 아이가 약간의 이상이 발견돼 재검사 대상자가 되었다는 말을 전해줬을 때, 아이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엉뚱한 기대가 들기도 했다. 나도 현역으로 병역을 마쳤지만 군대에서 길고 힘든 시간들을 마주하게 될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을 완전히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재검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현역 판정을 받은 아이가 의연하게 씩 웃으며 "잘됐네요."라고 말했을 때 차마 그 웃음을 맞받아줄 수 없었다.
아이를 훈련소에 데려다줄 날이 다가왔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부모가 제대로 배웅도 못 하고 훈련소 문 앞에서 차 문을 열고 아이들만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훈련소 안의 살풍경한 모습을 보면 나도 아내도 더 마음이 아파질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훈련소에 도착했더니 요즘 거리두기가 좀 완화되면서 입소식을 다시 하게 되었다며 부모들도 모두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훈련소 안의 풍경은 예상과 많이 달랐다. 흙먼지 날리는 연병장에 빨간 모자, 칙칙한 군복을 입은 조교들이 도열해 있는 긴장되는 모습을 예상했는데, 정작 훈련소 안은 풍선으로 만든 환영문구와 군데군데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포토존, 떡과 음료수를 나눠주는 모습까지 작은 축제의 장을 연상케 했다. 행사장에 들어가는 입구에는 사병 지급품 견본들이 놓여 있었는데 한 사람에게 지급하는 물품이 큰 테이블 두 개를 채울 정도였다. 여러 종류의 배낭과 피복류, 선글라스까지 있었는데 지급품의 품질도 아주 좋았다. 전문 등산화처럼 만들어진 군화를 보니 이제 행군하다가 물집 잡힐 걱정은 좀 덜겠구나 싶었다.
더 놀라운 것은 군의 열린 자세였다. 군대는 그 특성상 외부에 공개하지 못할 일들이 많고 이것이 불합리한 일들을 감추는 역기능을 지니고 있는 것도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엔 훈련소 곳곳을 부모들에게 공개하면서 아이들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했고 입소 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분대 배치 및 담당 하사관, 장교들의 연락처까지 메신저로 전달됐다. 스마트폰 전용앱에서는 개인별로 훈련 마감일과 제대일이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그날 어떤 메뉴의 식사를 했는지까지 세세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며칠 전 아이가 훈련 중에 조금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소식이었지만 문제가 생긴 첫 시점에서부터 병원에 이송돼 가벼운 처치를 받고 부대로 복귀하는 모든 단계에서 담당 하사관이 일일이 전화를 통해 진행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해줬고, 아이와 통화도 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던 우리 군도 이렇게 달라지고 좋아졌구나 하는 생각에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노력을 기울였을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병력이 부족해진 러시아에서는 동원령이 떨어지자 많은 러시아 젊은이들이 해외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처음부터 정당성이 없는 전쟁인 데다 나라를 지키러 가는 그들을 그 '나라'가 제대로 지켜주지 않을 거라는 불신과 공포가 징병 거부로 귀결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젊은이들에게 나라를 지킬 의무가 있다면, 그 젊은이들을 지킬 의무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있다는 점을 잊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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