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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문학상 아니 에르노… 자전적 여성·계급 문학의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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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82)가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계급·젠더 불균형을 예리하게 포착한 자전적 소설들로 매년 수상 후보에 올랐던 작가다. 지금까지 119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여성으로선 17번째다.
스웨덴 한림원은 6일 에르노를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라고 소개했다. 또 "젠더, 언어, 계급적 측면에서 첨예한 불균형으로 점철된 삶을 다각도에서 지속적으로 고찰했다"면서 "길고도 고된 과정을 통해 작품 세계를 개척해왔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수상자 발표 직후 에르노는 스웨덴TV와의 인터뷰에서 "매우 영광"이라며 "큰 책임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노벨상 수상자는 상금 1,000만 크로나(약 12억8,000만 원)와 함께 메달과 증서를 받는다.
1940년 프랑스 릴본에서 태어난 에르노는 노르망디의 소도시 이브토에서 성장했다. 루앙대를 졸업하고 중등학교 교직생활을 거쳐 문학 교수가 됐다. 1977년부터 2000년까지 프랑스 국립 원격교육원(CNED) 교단에 섰다. 카페 겸 식료품을 운영하는 부모님 아래 성장했던 유년 시절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당시 자각한 계급과 불평등은 에르노 문학의 기반이 됐다. 고작 12세에 겪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 한 일은 이후 자전적 소설 '부끄러움'의 소재가 됐다.
에르노 문학의 핵심은 자전적 글쓰기다. 1974년 자전적 소설 '빈 장롱'으로 등단했고 1984년 '자전적·전기적·사회학적 글'이라 명명된 작품 '자리'로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2008년에는 현대 프랑스 변천을 조망한 '세월'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등을 석권했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작가 스스로가 밝힌 작품관에 속하는 소설들이다.
또 다른 대표작으로는 '단순한 열정' '부끄러움' '사진의 용도' 등이 있다. 특히 2011년 자전 소설과 미발표 일기 등을 수록한 선집 '삶을 쓰다'는 프랑스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되는 쾌거를 이뤘다. 갈리마르는 프랑스 문학 거장들의 작품이 주로 묶인 시리즈로, 생존 작가가 편입된 것은 에르노가 처음이다. 2003년 발두아즈주(洲)에선 작가 자신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상'이 제정되기도 했다. 이날 AFP통신은 "20권이 넘는 에르노의 책들은 수십 년간 프랑스 학교 교과서였다"면서 "그의 작품이 현대 프랑스의 사회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미묘하고 통찰력 있는 창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에르노의 글은 무엇도 덧붙이지 않은 깔끔함으로 대변된다. 이재룡 숭실대 불문과 명예교수는 "자신이 경험한 죽음과 상실 등을 아주 솔직하게 가감없이 간명한 문체로 써서 독자들에게 소구력이 있다"고 평했다. 소설인 듯 아닌 듯 혼란스러울 정도의 글쓰기로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지만 "문학의 영역을 (나에 대한 글쓰기로) 확장하면서 독자들에게는 친근하게 다가갔다"고 분석했다. 특히 초기 문학의 성취로 "자아가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을 꼽았다. 거대담론이 밀려나고 개인으로 시선이 돌아오던 1980년대 흐름과도 맞아떨어진 작법이었다.
나를 고백하는 여성 문학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란 평도 나온다. 여성문학사를 연구하는 장영은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지금까지 하찮고 사소하다고 여겨졌던 여성의 삶을 다루는 이야기가 인정받은 것"이라며 "자기 삶을 고백하는 글도 문학적인 깊이가 엄청나다는 걸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성장 과정에서 겪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이 에르노의 문학 세계다. 장 교수는 눈에 띄는 작품으로 "'그들의 말 혹은 침묵'은 생애주기별로 겪는 삶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잘 표현했고, 임신중지 경험을 기록한 '사건'은 용기가 필요한 고백을 과감하게 했다는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국내에는 '그들의 말 혹은 침묵' '사건' '단순한 열정' '카사노바 호텔' 등 10여 권이 번역 출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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