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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만에 문 닫을 처지... 여가부 '뗐다 붙였다' 넘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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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부→여성가족부→여성부→여성가족부→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
여성가족부 존폐 논란이 또 불거졌다. 21년째 도돌이표다. 다만 이번엔 진짜 간판을 내릴 위기다. 윤석열 정부는 여가부 자체를 없애고, 관련 기능을 이관시켜 보건복지부 산하 '본부'로 두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름도 '여성'에서 '양성평등'으로 바꾸고, '인구'를 추가시켰다. 명칭이 길어졌을지 몰라도, 급을 떨어트려 힘을 뺐다. 이명박 정부 때도 폐지가 추진됐지만, 규모가 축소됐을 뿐 문을 닫지는 않았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뗐다 붙였다'만 반복하는 근시안적 개편 논의에 우려를 표한다. 정치공학 접근에서 나온 '게으른 정책'이란 비판이다. 성평등 주무부처에 확실한 힘을 실어줘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걸 원칙으로 삼는 세계적 추세와도 어긋난다. 선진국들은 나라마다, 시기마다 형태는 조금씩 다를지 모르지만 성평등 이외에도 차별 시정 정책기구 등을 별도로 둬 유기적으로 통합 운영하는 모습이다. 이 참에 우리도 성평등 정책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정부 시스템을 고민해볼 때라는 지적이다.
시작은 창대했다. '여성의 세기'라는 21세기 출발에 맞춰, 2001년 대한민국 최초 성평등 정책을 추진하는 주무부처로 출범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공이 컸다. 여성운동의 거목이었던 이 여사는 여성인권을 신장하고, 성평등을 제고하기 위해 독립적 위상을 가진 부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여성문제를 한 단계 올려놓는 것"(1998년 DJ 취임 7개월 차 한국일보 인터뷰)이라던 이 여사의 강력한 소신은 '여성부'의 탄생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선 보육·가족 업무까지 넘겨받으면서 '여성가족부'로 확대, 존재감을 키워 나갔다.
영광의 시절은 짧았다. '작은 정부'를 지향했던 이명박(MB) 정부는 국정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2008년 여가부 폐지를 추진했다. 여성단체들의 반발로 가족 청소년 업무를 보건복지부에 다시 떼 주는 선에서 '여성부'로 겨우 살아남긴 했지만, 예산이 20분의 1로 줄고 정원이 40% 축소되는 등 타격은 컸다. 2년 만에 청소년 가족 아동 업무를 다시 가져와 여성가족부로 복원됐지만,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여가부 역할 확대"를 공언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여가부 폐지 여론이 수면 위로 본격 떠오른 건 미투 운동 등 젠더 이슈가 고조된 2018년 이후부터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박탈감과 불안을 느낀 일부 젊은 남성들이 여가부의 존재를 '역차별'이라고 반발하면서다. 젠더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여가부 폐지'는 '치트키'처럼 소환됐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사회 변화의 반발심리)'가 여가부 폐지 동력의 땔감이었던 셈이다.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구조적 성차별과 성격 차에 눈감은 일방적 주장이었지만, 남녀 갈라치기를 노리는 정치권이 편승하면서 여가부 폐지는 공론(公論)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정치적 노림수에 따라 존폐론이 좌우된 격이다.
그렇다 해도 여가부 역시 잘한 건 없다. '권력 눈치 보기'로 정치적 먹잇감을 자초한 건 여가부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권력형 성폭력 범죄에 대해 여가부 장관이 "국민 전체가 성인지(감수)성에 대해 집단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권력형 성범죄에 눈감고, 두둔하는 전현직 여가부 출신들의 부적절한 언행은 여성들마저 여가부에 신뢰를 잃고,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여가부의 문제를 따져 올라가면, 결국 '힘이 없어서'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여가부는 올해 예산 1조4,650억 원으로 정부 예산 비중의 0.24%, 정원은 270명에 불과한 '초미니부처'다. 그럼에도 하는 일은 전방위적이다. 성평등, 젠더폭력, 여성고용, 가족 돌봄 지원, 청소년 정책까지. 여성 대상 업무를 포괄하는 것은 물론 가족 보육 청소년 이슈까지 망라돼 있다.
업무가 여러 분야에 걸쳐 있는 만큼 타 부처와 협업이 필수지만,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는 이유로 주춤하고, 그러다 보니 존재감이 약해지고, 정권과 여론의 눈치를 보며 중심을 못 잡는 악순환이 반복됐다는 평가다.
이에 여성계는 여가부를 없앨 게 아니라 더 강한 힘을 실어줘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자고 제안한다. '여가부 폐지'가 아니라 '여가부 강화'다.
정부여당 측은 "여가부 폐지가 기능 축소가 아니라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통합"이라고 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무 중복은 여가부가 아니어도 여러 부처에 해당되는 문제다. 체급 차이에서 오는 현실적 벽도 크다. "장관급 부처로도 협업이 쉽지 않은데, 차관급 본부장의 이야기를 어느 부처가 귀담아 듣겠냐"는 반박이다.
실제 부처와 본부, 그 위상과 역할은 하늘과 땅 차이다. 여성 정책을 진두지휘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여성 정책을 21년 전으로 거꾸로 후퇴시키려 한다"(지난 4일, 전국 286개 여성시민사회단체 윤석열 정부 규탄 성명)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그럼 여가부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전문가들은 '뗐다 붙였다' 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12월 말 나온 국회입법조사처 '성평등 추진체계의 국내외 현황과 과제' 보고서에서 "여가부를 중심으로 '성평등 추진체계'를 유기적으로 구축하자"고 제안한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보고서는 여가부를 부처에서 격하시키는 건 대안이 아니라고 먼저 짚는다. 실질적 권한이 주어지지 않으면 사실상 조직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의 성평등 정책 조직의 형태는 다양하다. 하지만 "부처가 아닌 실(Office)이나 국(Bureau)의 형태더라도 입법권, 발의권을 갖고 권한이나 사무 등을 부처와 같은 수준으로 담보하고 있으며 정책 실행을 총괄"하고 있다.
또 "국무총리실 소속 양성평등위원회가 정부 부처의 위상과 역할로 봤을 때, 정책을 총괄 조정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짚었다. 대신 "국가인권위원회와는 별도의 부총리급 위상의 '성차별고용시정위원회'(가칭)를 새로 만들어 성차별 시정업무를 전담시키자"는 제안이다.
이 같은 제안을 토대로 보고서가 정리한 성평등 추진체계의 종합적 대안은 이렇다.
△성평등 정책 주무부처로서 여가부를 컨트롤타워로 두고 △각 부처에 파견된 양성평등정책담당관 제도를 실질화하고 △성차별 시정업무를 담당하는 (가칭)성차별고용시정위원회를 새로 설치한다.
똑같이 일해도 남성이 100만 원을 받을 때, 여성은 61만9,000원을 받는 나라.(지난해 여가부 통계) 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 등 4대 흉악범죄 피해자에 여성이 남성보다 8배가량 많은 나라.(법무연수원 2021 범죄백서) 여자라서 차별받고 생존까지 위협당하는 현실인데도 대통령 혼자서만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외치는 나라에서 여가부를 없애는 것만이 능사일까.
"여가부 폐지는 오히려 대한민국의 성평등을 강화할 수 있는 체계다", "여가부가 폐지된다면 상당히 중요한 일을 한 장관으로 평가될 것"이라는 김현숙 여가부 장관의 호언장담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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