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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폭우 땐 빗물 저장고가 되는 중학교? 뉴욕시가 홍수에서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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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1일, 미국 뉴욕시 브롱크스 지역의 ‘아이칸 차터 중학교’에 조금 특별한 운동장이 새로 생겼습니다. 이 학교는 비가 오면 빗물 약 9,400톤을 흡수합니다.
기존 아스팔트로 덮여 있던 운동장을 잔디밭으로 바꾸고, 운동장 주변 땅은 ‘투수성 포장도로(permeable pavement)’로 만든 덕입니다. 투수성 포장도로는 도로에 빗물이 스며들 수 있도록 설계한 땅입니다. 표면 아스팔트에 미세한 구멍을 만들고, 아스팔트 아래엔 빗물을 머금을 모래를 깝니다. 잔디밭으로 만든 운동장 역시 빗물을 머금습니다.
청계천에 매일 투입되는 물이 약 14만톤이라고 하는데요. 9,400톤은 작은 학교 하나가 흡수할 수 있는 것 치고는 상당히 많은 양입니다.
이 ‘빗물 저장 학교’는 뉴욕시의 기후위기 적응 정책 중 하나입니다. 뉴욕시는 지난해 허리케인 '아이다'로 큰 홍수 피해를 입었죠. 폭우로 13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11명이 반지하 거주자였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기상 조건이 완전히 바뀌어서, 이전의 배수 설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은 결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뉴욕시는 매년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도시 홍수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배수관을 더 큰 것으로 바꾸거나, 해안가 공원의 고도를 높이거나, 바다에 거대한 허리케인 방벽을 설치하는 등 수천~수조원 규모의 토목 공사가 포함됩니다.
그러나 뉴욕의 환경 전문가들은 이 작은 운동장에 주목합니다. 토목 공사 못지않게, 홍수 대책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뉴욕시의 그린 인프라스트럭처(Green Infrastructure·GI) 운영 현장을 찾아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달 11일 뉴욕시 퀸즈 지역 레고파크에 도착했습니다. 레고파크 지역엔 빗물정원(레인가든)과 투수성 포장도로가 설치돼있습니다. 투수성 포장도로는 아이칸 차터 중학교에 설치된 것과 유사한 종류입니다. 겉보기엔 일반 아스팔트와 큰 차이가 없어서 시설을 찾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물을 뿌려보니 확실히 표면에 흐르는 물이 적습니다.
빗물정원 역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가기 쉽습니다. 한국 도로에도 이곳 저곳 널려있는 가로수와 모양새가 유사합니다. 그러나 빗물정원 또한 의도적으로 설계한 빗물 저장고라는 게 뉴욕시의 설명입니다.
일단 흙의 면적이 일반 가로수보다 넓고, 도로 쪽으로 30㎝ 길이의 통로가 두 개 패여 있습니다. 도로에 흐르는 빗물이 정원 안으로 유입되도록 한 것입니다. 이 통로에 낙엽이나 쓰레기가 쌓이지 않도록 뉴욕시 환경보호국(DEP)이 정기적으로 점검도 한다고 합니다. 지난해에만 이런 정원이 뉴욕시 전역에 1,000개 넘게 설치됐습니다.
뉴욕 맨해튼 건물 옥상에도 이런 빗물정원이 다수 설치돼있습니다. 뉴욕시가 2019년 신축 또는 리모델링 건물 옥상에 빗물정원을 반드시 설치하도록 의무화했기 때문입니다. 하중·기타 필요 설비를 고려해 설치가 불가능한 부분 외 ‘모든 면적’에 빗물정원을 설치해야 합니다. 다만, 빗물정원 대신 태양광 발전 패널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이런 도심 속 설비들은 뉴욕시가 2012년부터 추진한 GI 사업의 일환입니다. GI는 학교 운동장·주차장·도로·공원·건물 옥상 등을 활용해 도심에 ‘투수성 공간’을 만드는 사업입니다.
뉴욕시 표면의 약 74%는 빗물이 흡수되지 못하는 '불투수성 공간'입니다. 건물과 도로를 지으며 흙을 콘크리트로 바꾼 탓입니다. 따라서 기습적 폭우가 오면, 땅에 흡수되지 못한 빗물이 배수관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흘러 넘치게 됩니다. 도시 홍수가 발생하는 것이죠. GI는 도시 유휴공간에 투수성 공간을 만듦으로써 배수관이 빗물을 처리할 시간을 벌어줍니다.
지난해 기준, 뉴욕시 전역에 1만1,000개가 넘는 GI가 설치돼있습니다. 면적으로 치면 8,474㎢, 뉴욕시 불투수성 표면의 약 30%에 달합니다. 연간 약 190만톤의 물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GI가 그 자체로 홍수를 막아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변화한 기후 상황에 맞춰 배수관 처리 용량을 늘리는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실제 뉴욕시는 GI 외에도 적극적이고 강도 높게 홍수 대책 시설을 늘리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인 지난 7월엔 낙후 지역인 퀸즈의 남부 자메이카 지역에 2,400만 달러(약 332억원)를 들여 빗물 배수관을 새로 설치했습니다. 지난 4월엔 남부 브루클린 지역에 1억4,800만 달러(2,047억5,800만원)를 들여 6.3마일(10.13㎞) 길이의 배수관을 설치했습니다.
맨해튼 남동부 공원 ‘이스트 리버 파크’에서는 땅의 고도를 높이는 공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무려 17억8,800만 달러(약 2조4,745억원)가 투입됩니다. 뉴욕주의 해수면이 1950년 이후 약 20㎝가 올랐고, 최근엔 7, 8년에 2.5㎝씩 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허리케인이 올 때 바닷물이 더 쉽게 도시로 범람하게 됩니다.
따라서 지대를 약 2, 3m 높이고 차단벽을 만들어 홍수 피해를 방지하는 공사가 진행중인 겁니다. 한 술 더 떠서, 최근 미 육군 공병대는 아예 뉴욕주 인근 바다에 거대한 허리케인 차단벽을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공사는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립니다. 그 사이 발생할 크고 작은 홍수 피해를 방지하기 어렵습니다.
또 모든 지역에서 진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수구 교체 사업은 맨해튼 중심부에서는 진행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지하철이나 건물 지하 시설 등 땅 속도 이미 과포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해안 허리케인 방지 시설도 바닷물 범람으로 인한 홍수 피해를 막을 수 있을 뿐, 육지에 내리는 폭우는 막지 못합니다.
뉴욕의 물 전문 환경단체 워터프론트얼라이언스의 커트니 워럴 대표는 “뉴욕시는 해안 홍수(Coastal Flood)와 도시 홍수(Urban Flood) 모두에 대비하기 위해 상호 보완적인 대책들을 여러 층위에서 진행하고 있다”며 “GI는 가장 자연친화적이고 빠른 방법으로 홍수 문제 대처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뉴욕시가 이런 대규모 공사를 하루 아침에 뚝딱뚝딱 시작한 건 아닙니다. 그 전에 도시가 마주한 위협의 크기를 가늠하는 수많은 연구들이 있었습니다.
미국 내 일년 중 가장 많은 비가 내린 30일의 강우량이 최근 50년 새에 70%가 늘었다거나(미국 세계 기후변화 리서치 프로그램), 시간 당 강우량이 약 1인치(25.4㎜) 이상 오는 날이 1.5배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기후변화에 관한 뉴욕시 패널·NPCC)등입니다.
지난해 뉴욕시는 이런 연구를 토대로 2050년과 2080년 도시가 홍수에 어떻게, 얼마나 취약해질지 예측하는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2080년에는 '100년에 한번' 확률로 시간 당 3.5인치(88.9㎜)를 퍼붓는 폭우가 올 수 있으며, 해수면은 4.8피트(146㎝)가 오를 것이라고 평가했죠. 도시의 상당 부분이 1피트(30㎝) 이상 물에 잠기게 됩니다. 참고로 지난달 서울 강남 일대를 잠기게 한 폭우는 시간 당 140㎜였습니다. 뉴욕시가 추진해온 그간의 대규모 설비 투자는 이런 연구의 결과물인 셈이죠.
뉴욕시는 피해 대책을 마련한 보고서 ‘뉴노멀: 폭풍우 관련 극한 날씨와의 전투’에서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이런 극한 날씨 사건은 점점 새로운 일상이 되고 있다. 기후 위기는 멀리 있는 위협이 아니고, 지금 이곳에 현실로 존재하며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이는 특히 저소득층과 유색인종에게 더 가혹하다. 기후위기 대응은 뉴욕시의 공중 보건, 환경, 인종을 위한 정의적 우선순위다."
최근 한국도 기록적인 폭우를 전례 없는 빈도로 겪고 있습니다. 집과 도로, 지하철이 침수되는 것도 이제 한국의 ‘뉴노멀’이 되어가고 있죠. 이젠 기후위기가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대책을 뉴욕과 비교해보면 어떤가요? 지금이라도 중앙·지방정부 당국자들이 문제 의식을 느끼고 종합적이면서도 실효성 있는 대책을 꼼꼼하게 마련해야합니다.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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