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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한국이 배웠으면...유통기한 지난 맥주 싸게 사고 탄소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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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을 축하해야죠! 미켈러(Mikkeller) 맥주 6캔을 45크로네에 가져가세요.”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한 슈퍼마켓의 광고입니다. 현지에서 인기 있는 미켈러사의 330㎖ 캔맥주가 6개에 45크로네, 약 8,100원이라고 하네요. 이 맥주는 원래 한 캔에 45크로네입니다. 한 캔 가격에 6캔을 살 수 있다니 솔깃할 수밖에요.
파격 세일을 하는 슈퍼의 이름은 위푸드(Wefood), 덴마크의 시민단체인 댄처치에이드(DanChurchAid)가 운영하는 ‘사회적 슈퍼마켓’입니다.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라벨 손상 등으로 팔기 어려운 음식만 모아 정가보다 20~50% 더 싸게 파는 곳이죠.
위푸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단지 코펜하겐의 높은 물가 때문만은 아닙니다. 멀쩡한데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것.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온실가스까지 줄여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이 슈퍼의 존재 이유거든요.
지난달 11일 코펜하겐의 뇌레브로(Nørrebro)에 있는 한 위푸드 지점을 방문했습니다. 코펜하겐 사람들 말로는 이 동네가 요즘 뜨고 있다고 하네요. 서울 성수동처럼 말이죠.
매장 안은 여느 슈퍼마켓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채소와 과일, 육류ㆍ생선 코너가 있고 음료수를 진열한 냉장고도 있었죠. 여름 맞이 아이스크림도 있고요. 낮 12쯤 방문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장을 보고 있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가격이었습니다. 1리터짜리 저지방 우유 한 팩이 5크로네, 약 900원입니다. 목삼겹 한 팩은 20크로네(약 3,600원)고요. 코펜하겐의 다른 슈퍼에서 샀다면 우유는 3000~4,000원, 고기도 6,000원은 족히 넘었을 겁니다.
“여기 있는 것들은 다 유통기한이 임박했거나 이미 넘은 것들이에요. 먹어도 되고 맛도 문제가 없지만 정가보다 싸게 팔고 있죠.” 자원봉사자인 에밀 미나나(32)씨의 설명입니다. 위푸드가 사회적 기업인 만큼 자원봉사자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하네요.
특히 위푸드 매장의 상품 가격은 매일 바뀐다고 합니다. 품질을 위해선 좀 더 빨리 판매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기한이 지날수록 더 싼 가격표를 붙인다고 하네요. “이 생선도 내일 오시면 훨씬 더 싸게 사실 수 있을 거예요. 버려지는 상품 없이 최대한 판매하는 게 목표거든요.” 에밀씨가 말했습니다.
매일 다른 식품이 진열되는 것도 특징입니다. 위푸드는 일반 슈퍼마켓이나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남은 제품을 기부받기 때문에 그날그날 다른 식품이 판매되는 거죠. 꼭 유통기한이 넘지 않더라도 캔이 찌그러져서 팔지 못하거나, 그저 안 팔려서, 새 상품을 판매하고 싶어서 남게 된 것들입니다. 단골 고객들은 퇴근 후 ‘오늘은 어떤 음식이 들어왔나’ 확인하러 오는 게 소소한 재미라고 하네요.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을 위해 제작했지만 팔지 못하고 남은 과자, 사탕들도 매장으로 들어옵니다. 이날도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판매됐던 초콜릿 세트가 있었어요. 유통기한이 8월 말로 아직 한참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푸드에서 파는 음식들이 정말 안전한 걸까요? 덴마크에서는 2015년 법 개정으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파는 것이 허용됐습니다. 위푸드도 법 개정 이후인 2016년부터 시작했죠. 다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이라도 먹을 수 있고 안전하다는 것을 꼼꼼히 검수해야 합니다.
위푸드도 매일 상품을 검사합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냄새를 맡고 먹어보는 등 직접 실험에 임하죠. 에밀씨는 품질 테스트를 위해 매장에 기부된 맥주를 맛보기도 하는데요. 자원봉사 하면서 특히 즐거운 순간 중 하나라고 하네요.
위푸드는 사실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과는 거리가 멉니다. 핵심 인력을 빼면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이고, 수익금의 대부분은 개발도상국의 식량 및 기후문제 해결에 쓰입니다.
하지만 영업 시작 약 6년 만에 매장은 6개로 늘었습니다. 지점마다 차이는 있지만 매일 약 50명에서 많게는 300명의 고객이 꾸준히 방문하고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위푸드에서 판매한 음식물은 1,018톤에 달합니다. 위푸드에서 팔지 않았다면 쓰레기가 됐을 상품입니다.
덴마크 사회의 문제의식이 컸기 때문에 위푸드도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덴마크는 2020년 ‘음식물 쓰레기의 날’을 지정할 정도로 이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덴마크에서 한해 버려지는 식품폐기물이 약 70만 톤인데 이를 줄이자는 경각심이 생긴 거죠. 덴마크 식품업계도 생산ㆍ유통ㆍ판매 과정에서 남는 음식물을 줄이기 위한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죠.
얀 마틴 위푸드 운영책임자는 “운영 초반에는 판매 가능한 상품들을 공급받기 위해 여러 매장의 문을 두드려야 했지만, 이제는 여러 유통업체에서 먼저 기부하겠다고 연락이 온다”고 말했습니다. 유통기한 지난 음식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일부러 찾아오는 고객들도 안정적인 경영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버려지는 식품의 양도 어마어마합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하루에 버려진 식품 폐기물은 2만1,065톤이라고 합니다. 음식물쓰레기와 동식물성잔재물을 합한 결과죠. 단 하루에 이 정도니 1년으로 치면 더욱 아찔합니다. 음식물 쓰레기가 버려지고 부패하는 과정에서 메탄 등 강력한 온실가스가 배출됩니다. 2019년 유엔개발계획(UNEP)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10%가 이렇게 나온다고 합니다.
현재 한국은 식품위생법에 따라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하지만 식품회사가 정하는 유통기한은 실제 품질유지 기간의 60~70% 정도로 짧아 멀쩡한 음식을 버릴 수밖에 없는 구조죠. 그나마 내년 1월부터 시작될 ‘소비기한 표시제’는 음식물 쓰레기 양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법이 개정되면서 기존 유통기한을 대체한 새로운 표기가 도입되는 거죠.
하지만 지난 11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제도 시행 첫해 1년간 계도기간을 두겠다고 발표했습니다. 1월까지 식품 포장지를 바꾸려면 비용 부담이 크다는 유통업계의 목소리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유제품 등 냉장 보관기준 개선 필요 품목으로 정해진 일부는 시행일로부터 8년 안에 적용하도록 예외를 두었습니다.
음식물쓰레기 해결의 첫 단추가 꿰어졌지만 실제 시행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입니다. 한국에서도 위푸드처럼 의미 있고 가격도 착한 슈퍼를 만날 수 있게 될까요?
소비기한 표시 제도가 도입돼도 찌그러졌거나 기한이 임박했거나 또는 기한과 상관없이 멀쩡한 식품은 늘 존재합니다. 이 제품들을 싸게 팔아서 탄소도 줄이는 가게, 한국에서도 널리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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