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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영업판의 나홀로 여자, 서러워도 슬퍼도 꽃비는 안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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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잼 원정대>는 '현대인의 일'을 탐구하는 콘텐츠 실험실 '커리업(caree-up)'의 인터뷰 브랜드입니다. '일에서의 재미'라는 희소자원을 찾아 정박하지 않고, 원정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동력 삼아 일하는 방법'을 수집합니다.
직장생활이란, 누구에게나 뜨거운 매운맛입니다. 매일 데여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맛. 하지만 그중에서도 ‘핵불닭볶음면’의 맵기를 능가하는 ‘최상급의 매운맛’이 있다면, 아마 이 사람의 일터가 아닐까 싶어요. 고생길이 훤하다는 영업 직무, 취급 품목은 무려 소주와 맥주, 초초초남초 조직에 나 홀로 여자. 남다른 깡다구 없인 눈뜨고 코가 베여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험지 중의 험지, 주류업계에서 15년을 강건하게 살아남은 이 여성의 이름은 바로 유꽃비(39), 롯데칠성의 주류 동부 FM(Field Marketing) 지점장입니다.
‘어? 이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아, 낯이 익은데?’ 하셨다면,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아시는 분들은 아실 거예요. 2년 전, tvN ‘유 퀴즈 온더 블록’에 출연해 촬영장을 뒤집어 놓고 간 ‘화제의 인물’이거든요. 현장 영업직 14년 차의 ‘짬’이 엿보이는 토크 장악력, 부지불식간에 상대의 급소를 치는 알싸한 입담, 적재적소에 자기 PR를 조미료처럼 뿌려 넣는 유려한 기술까지… 모두가 혀를 내두르며 이렇게 말했죠. "저런 사람이 ‘최초’ 꼬리표 달고 영업왕이 되는 거구나.”
꽃비씨의 직업 인생엔 유독 ‘최초’가 자주 따라다녔습니다. 최초의 여성 영업 사원, 최초의 여성 영업 지점장. ‘첫인상부터 내공이 느껴진다’는 MC 유재석의 말에 “닳고 닳았져~?”라는 구수한 대답이 마중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이 사람은 가장 센 불에 자신을 던져 넣고 스스로 담금질해온 ‘철의 여인’이라는 사실을요. 그래서일까요? 꽃비씨 근처엔 음침한 질투가 덕지덕지 묻은 별명 역시 적잖이 따라다닙니다. 성공에 미친 욕망 아줌마, 소문으로만 듣던 무시무시한 마녀… 심지어는 꽃비씨를 처음 만난 경비원조차 “부하 직원이 힘들겠네, 저 여자 눈매가 보통이 아니야”라고 뒷담화했을 정도라니 말 다 했죠. “그래도 상관없어요. 모두에게 좋은 사람 되려고 회사 들어온 거 아니니까.”
실제로 만나 본 그의 삶은 ‘독기로 똘똘 뭉친 악바리의 야망 드라마’가 아니라 ‘정에 죽고 정에 사는 사람 바라기의 휴먼 다큐’였어요. 그도 그럴 것이 꽃비씨는 오직 사람만 보고 영업 판에 뛰어들었거든요. 사람이 좋아 영업을 시작했고, 때로는 사람에 데여 무릎이 꺾이기도 했지만, 또다시 사람 때문에 다시 일어서 달려온 날들이 모여 15년을 이뤘대요.
비가 장대처럼 퍼붓는 날, 허리가 끊어져라 맥주 박스를 나르던 날에도, 거래처 사장에게서 “이 동네에서 다신 발 못 붙이게 해줄까”라는 협박을 들을 때에도, 전임자가 골고루 망쳐 놓고 간 일을 바로잡는 뒤치다꺼리를 할 때도, 그가 끝내 잃지 않은 게 있다면 ‘영업은 사람이 하는 일이니, 사람을 믿어야 한다’라는 신념이었다고 해요. “어휴, 저 독기 좀 봐”라며 고개를 내젓는 사람들이 한참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어요. 꽃비씨가 흘러넘치게 타고 난 건 욕심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애정이거든요.
신입사원 시절, 꽃비씨를 따로 불러낸 몇몇 선배들은 팔짱을 끼고 물었습니다. ‘너는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눈치를 안 보니?’ 잘못한 것도 하나 없이 그런 이유로 참 많이도 불려 다녔다고 해요. 한마디로 ‘나대지 말라’는 엄포였죠. 그러든가 말든가 꽃비씨는 좀처럼 기죽질 않는 신입이었습니다. 아무리 핀잔을 줘도, 꾸중해도 “넵! 잘못했습니다! 다음엔 조심하겠습니다!” 넙죽넙죽 받아 넘겨버리는 겁니다. 혼나는 사람답지 않은 씩씩함으로요. 작정하고 눈물을 쏙 빼주려 했는데 영 의기소침해지질 않으니 혼을 내는 사람 입장에서도 타격감이 없는 거죠.
그것도 모자라 회사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우렁차게 인사를 하고 다녔답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불문한 그 살가운 인사에 그의 이름 석 자가 삽시간에 회사에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 사람 누구래요?” “아 왜~ 3년 만에 들어온 여자 신입사원 있잖아요. 이름이 유꽃비랬나?”
좀처럼 주눅이 들지도, 기가 죽지도 않는 그 짱짱한 탄력의 맷집은 피바람이 부는 영업 현장에서 맨몸으로 맞짱을 뜰 수 있는 든든한 군장이 되어줬습니다. 입사 전엔 와인 한번 제대로 마셔본 적 없었던 그가 와인 영업으로 ‘전국 1등’을 먹었던 것도, 경쟁사가 선점한 광고 모델을 기막히게 설득해 내 편으로 끌어온 것도, 전임자들이 10년 넘게 포기했던 거래처를 시원하게 뚫어버린 것도, 바로 그 ‘맷집’ 덕분이었다고 해요.
물론 천상 영업사원에게도 밥 먹듯이 당하는 문전박대에, 영문도 모르고 욕을 한 바가지씩 들어야 했던 날들이 마냥 즐겁진 않았습니다. 영업이란 ‘천태만상 인간군상’을 다 보는 직업이니까요. 독보적인 브랜드파워가 있는 회사에서도 영업은 무척 힘든 일이라고 해요. 하물며 주류 업계 2위 회사의 영업이니, 얼마나 쉽지 않았겠어요.
타고 나길 상처에 강한 사람이 따로 있을까요. 상처를 받아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죠. 꽃비씨는 ‘마지막으로 딱 한군데만 더 가보자’는 질긴 끈기로 매일을 버텼다고 해요. “북받칠 만큼 서러운 순간이 왜 없었겠어요. 그런데 회사에서도, 거래처에서도, 일터에서 눈물을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이 꽉 깨물고 꾹꾹 참았다가, 혼자 차 안에서 많이도 울죠. 그렇게 시원하게 엉엉 울어버리고 집에 들어가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파워풀한 엄마가 되는 거죠.”
경쟁사의 이직 제안에도 꽃비씨가 15년을 일편단심 한 회사에 남은 이유는 ‘처음처럼’을 자식처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고깃집에만 가면 꽃비씨의 눈동자는 있는 힘껏 바빠집니다. 남의 테이블 위에 어떤 소주가 올라가 있나 유심히 살펴봐야 하거든요. ‘처음처럼’을 마시는 테이블에 수줍게 무언의 ‘따봉’을 보내다 오해를 산 적도 많고요. 친구들이 장난으로 경쟁사 소주를 사 왔을 땐, 하도 정색을 하고 화를 내서 주변인들이 다시는 그런 장난을 치지 않을 정도라고 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포털 검색창에 ‘처음처럼’을 써넣는 것, 회사가 야속한 적은 있어도 ‘처음처럼’이 싫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하니, 꽃비씨는 확실히 ‘주인의 그릇’으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어깨를 내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심장을 가져오겠다’는 패기로 소주 업계를 평정한 유꽃비 롯데칠성 동부FM지점장을 지난 8일과 15일 두 번에 걸쳐 서울 서초구 롯데칠성 서초지점에서 만났습니다.
대학 때 말이야, 나는 술이 너무 좋았어. 아, 물론 술 중에 최고는 단연 소주였지. 오죽하면 수업은 밥 먹듯이 땡땡이를 쳐도 술자리는 땡땡이치는 날이 없었겠어. 심지어는 고등학교 동창이 다니는 대학의 고교 동문회까지 따라 나갔다니까. 술이 들어가는 자리엔 안 끼는 곳이 없었지. 그러니 주류 회사에 취직하는 게, 꽤 자연스러운 수순 아니었겠어. 합격 소식을 알렸을 때, 친구들이 웃으며 그러더라. ‘그렇게 술 좋아하더니 직업도 술로 택했냐’고. ‘천직인 거 아니냐’고.
엉덩이 오래 붙이고 앉아있는 일은 죽어도 싫어서 택한 직무가 바로 영업. 사람 만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사람인데, 이거만 한 일이 있을까 싶더라고. 그런데 입사 면접에서 계열사 회장님이 이렇게 묻는 거야. ‘딸 같아서 하는 말인데, 주류 영업은 정말 험하다, 다시 생각해 봐라.’ 술이 좋아 주류 회사를, 사람이 좋아 영업을 택했는데 시작도 전에 포기하는 건 좀 아니잖아.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지. ‘고된 길이라는 걸 알고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저, 더 힘든 일도 많이 해봤어요. 잘할 수 있어요. 정말 술을 좋아하거든요.’
밥벌이라는 게, 직장생활이라는 게 원래부터 힘든 거라니까, 적어도 좋아하는 걸 하면 덜 서럽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있었던 거 같아. 그렇게 시작됐어. 주류 회사 최초 여성 영업사원으로서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꽃비씨의 신입 시절은 그야말로 ‘천둥벌거숭이 같았다’고 해요. 일이 너무 좋아서 매일 아침 출근이 기다려질 정도였지만, 앞서나간 의욕 탓에 사고도 참 많이 치고 다녔거든요. 신입답지 않게 일을 크게 벌이는 걸 도통 무서워하질 않아서, 자주 불려가 혼이 났죠. 남들 같았으면 혼나기 싫어서라도 몸을 사렸을 텐데, 꽃비씨에게 그 정도 꾸중은 ‘꾸중 축’에도 못 꼈다고 해요. “실은 제가 어릴 때부터 사고를 많이 치며 자랐어요. 그래서 혼나는 게 하나도 무섭지가 않은 거예요. 회사 와서도 겁이 없었죠. 그리고 신입이 사고를 쳐봤자 뭘 얼마나 크게 쳤겠어요. 변명도 부인도 없이 ‘잘못했습니다!’ 하니까 상사도 할 말이 더 있나요. 대신 이거 하나는 제대로 지켰어요. 한번 지적당한 실수는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다.”
최근 꽃비씨는 사회초년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이런 말을 자주 한대요. “사고는 일을 한 사람들만 칠 수 있는 거다. 실수할까 봐, 책임질까 봐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일잘러들의 과거를 보면 하나같이 ‘천방지축 트러블메이커’였던 시절이 꼭 있거든요? 신입 때만 가질 수 있는 짱짱한 패기로 우당탕탕 달려 나가다 넘어져 본 경험이 안전한 보폭을 배울 수 있게 해주는 거죠. 넘어지지 않는 선에서 가장 크게 뻗을 수 있는 '성장의 보폭'을요. 확실한 건 고꾸라질까 두려워 다리조차 뻗어보지 못 한 사람은 영원히 달릴 수 없다는 겁니다.
여러 번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며 굳은살 만들 듯 장착한 ‘깡’은 현장에서 비로소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꽃비씨의 일은 호텔 거래처를 상대로 와인을 영업하는 거였어요. 소주가 좋아서 소주 만드는 회사에 들어온 건데, 갑자기 와인으로 가라니, 처음엔 의아했죠. 와인은 고급 주류잖아요. 아무리 술을 좋아하던 꽃비씨라도 와인은 멀고도 낯선, 어쩐지 위화감이 드는 주종이었습니다. 당시 꽃비씨 나이가 스물넷이었으니, 병당 수십만 원이 넘어가는 고급 와인을 제대로 음미하며 마셔본 적은 없었거든요. 게다가 콧대 높은 호텔 레스토랑의 소믈리에들을 상대하는 일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와인 전문가한테 와인 찌끄레기가 와인을 팔려니 얼마나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아는 척을 하는 게 아니라, 그분들이 마음껏 아는 척을 하게 만들어줬어요. 조예가 깊은 분일수록 남한테 지식을 뽐내는 걸 무척 좋아하시거든요. 갈 때마다 신나서 물어봤죠. ‘오늘은 무슨 이야기해주실 거예요’ 영업직은 상대에 맞는 가면을 쓰는 게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일명 ‘멀티페르소나’ 기술이죠.” 특급호텔 소믈리에들의 충실한 과외 학생이 되어 알차게 배운 지식은 반대쪽에서 고스란히 써먹을 수 있었습니다. 구매팀과 일할 때는 또 전문가인 척, 아는 척이 필요하거든요. 그간 배워온 걸 역으로 뽐내는 시간이었죠.
게다가 당시 꽃비씨의 사수는 ‘와인에 죽고 와인에 사는’ 열혈 와인 영업사원이었어요. 호락호락하지 않은 소믈리에들조차 이분이 온다면 먼저 마중을 나와 있을 정도로요. 그도 그럴 것이 사수는 휴가 때면 서울 전역의 호텔 와인 담당자들을 모아다가 해외로 와이너리 투어를 다녀올 만큼,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 사수에게서 제대로 배운 게, 바로 영업사원의 인간관계였어요. 저희가 업계에서 1등 하는 회사가 아닌데도 그분의 맨파워가 대단했던 이유는, 거래처인 소믈리에들을 인간 대 인간으로 대했기 때문이에요. 이탈리아로 와이너리 투어를 떠나면, 버스 렌트부터 운전까지 다 본인 손으로 했대요. ‘일로 만난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하며 ‘와인을 좋아하는 친구 사이’로 발전한 거죠. 같이 여행까지 한 사이인데 소믈리에들이 이분을 얼마나 특별히 대해줬겠어요.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끈끈한 신뢰의 힘을 그때 확인했죠.”
무엇이든 다 알려줄 준비가 돼 있는 사수, 무엇이든 다 배워버릴 기세로 무장한 후배가 만나니 ‘폭발적인 성과’를 내는 드림팀이 됐다고 해요. 회사에 들어와 서류 작업을 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평일엔 온종일 밖에서 영업을 뛰고, 문서는 토요일에 출근해 따로 처리했을 정도였다니 말 다했죠. ‘올해 그렇게 다 소진해버리면 내년엔 어쩌려고 그러냐’는 주변인들의 만류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발바닥에 불이 나게 달렸답니다. 결국 목표 대비 156%의 매출을 달성해 ‘전국 1등’을 찍었죠. 앞뒤 재지 않고 전력 질주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서 본 경험은, ‘성취감’의 감각을 일깨워 줬습니다.
“1등을 한번 해봤던 게, 이후 직장생활을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어요. 브랜드 매니저들이 먼저 다가와 좋은 와인들의 우선 사용권을 줬고, 행사 때 추가인력을 요청할 때마다 손쉽게 협조를 받을 수 있었죠. 그러니 더 좋은 성과로 이어진 건 말할 것도 없었고요. 그 특별 대우의 맛을 보고 나니 놓치기 싫었죠.”
‘할까 말까 할 땐, 무조건 한다’
당시 꽃비씨의 마음속에 바로 선 ‘일터의 신조’라고 해요. 남들 말만 듣고 적당히 했다면 아마 ‘1등’이란 쾌감을 보지 못했겠죠. 성취감이 사람을 얼마나 고양시키는지, 1등에게만 주어지는 기회에 얼마나 달콤한 가능성이 깃들어 있는지 영영 경험해보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1등을 찍은 그다음 해에, 저연차 사원들을 모집하는 ‘주니어 보드’에 참가했어요. 2030 사원들이 참가하는 아이디어 공모 프로젝트였는데요. 업무 외 시간을 따로 투자해야 하는 데다가, 따로 배워야 할 것도 많아서 실무자로서는 적잖이 부담이 됐지만… 망설이다 보니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입사할 때부터 소주를 해보고 싶었는데, 제 의사와는 다르게 와인을 맡게 됐으니까, 이번이야말로 기회다 싶었죠.” 이때 좋은 성과를 낸 꽃비씨는 실제로 꿈에 그리던 ‘처음처럼’의 마케팅팀으로 가게 됩니다.
회사 생활하면서 단련한 내 주요 스킬 중 하나는 ‘경영진 방문 열기’야. 다들 알지. 임원들은 다 각자 자기 방이 있잖아. 보고라도 하려면, 서류에 결재라도 받으려면 꼭 그 문을 열어야 해. 목적이 없는 한 좀처럼 두드리지 않는 문이지. 남들은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게 그렇게 어렵고 힘들다던데, 나는 좀 달랐어. 어른들을 별로 어려워하질 않는 성격이거든. 임원들은 그 방안에서 뭘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원체 호기심이 많아서 말이야.
그 방문을 자주 두드렸어. 상무님 방이든, 본부장님 방이든 쓱쓱 들어갔지. ‘안 바쁘세요~?’ 물어보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우리 같은 실무진은 좀처럼 파악하기 어려운 정보도 쏠쏠히 나오곤 해. 요즘 회사 분위기는 어떤지, 임원 회의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이게 말이야, 일견 사소한 정보들일지라도 기획안을 짤 때면 다 도움이 돼. 임원 회의에서 이번 분기엔 긴축 재정을 한다는데, 실험적인 판촉안을 가져가면 당연히 반려가 될 것 아냐. 대박을 터뜨릴만한 정보는 아니지만, 적어도 ‘쪽박’은 피할 수 있는 거지.
어르신들하고 나이 차를 넘어선 말동무가 되고, 때로는 고민을 안주 삼아 술도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사이가 되고 보니, 인생에 쓸모없는 경험이란 없더라. 사람 챙기는 걸 뭘 바라고 한 일은 아닌데, 그게 내 일의 역량과도 직결될 줄 그때는 몰랐어.
꽃비씨의 커리어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클라이맥스는 대부분 ‘마케팅부 시절’에 몰려 있어요. 따지고 보면, 마케팅과 영업은 완전히 다른 일은 아닙니다.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제품을 더 잘 팔기 위한 직무라는 점에선 같으니, 어쩌면 마케팅을 두고 ‘덩치 큰 영업’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현장이라는 맨땅에서 습득한 ‘영업맨 DNA’는 마케팅부에 간 꽃비씨에게 남다른 차별점을 만들어 줬다고 해요.
일반적으로 파는 사람은 을(乙), 사는 사람은 갑(甲)이죠. 을은 언제나 갑보다 두세걸음 먼저 움직여야 해요. 갑의 선택을 받아야 하니까요. 꽃비씨에겐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지만 마케팅부 동료들에겐 그런 모습이 무척 생소했던 겁니다. “마케팅부는 본사에서도 갑 중의 갑인 부서예요. 움직이는 예산도 크고요. 협력사를 고를 때에도 언제나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서요. 반면 저는 언제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보니, 오히려 반대편 입장에 이입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게 저만의 장점이 됐어요.” 어떤 일을 해도 상대의 상황이 더 잘 이해되니까, 몇 수 앞을 먼저 내다볼 수 있었습니다. ‘을의 서러움’을 뼛속까지 경험했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고 하네요.
거기서 다가 아니었어요. 영업맨의 DNA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2015년, 후배의 아이디어로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던 ‘스티키몬스터랩’과 ‘처음처럼’이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할 때의 일이었죠. 소주 용기는 브랜드를 불문하고 초록색 유리병이잖아요?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용기 자체를 바꾸는 것’이었어요. 풍선처럼 동그란 ‘스티키몬스터’의 몸통을 본떠 병 자체를 캐릭터의 피규어(figure)처럼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거든요. 병을 통째로 바꿔야 하니, 생산 본부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했죠.
“당시만 해도 제품의 패키지를 바꾼다는 게 진짜 혁명적인 아이디어였어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았죠. 사실 회사 일이라는 게 기획발로만 진행되지는 않거든요. ‘짬’이나 실행 전략에서 밀리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묻힐 가능성이 높아요.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후배에게 이야기했어요. ‘너는 머리 역할을 맡아, 나는 발을 맡을게. 발로 뛰어서 무슨 일이든 되게 할게’”
본사 마케팅부로 자리를 옮긴 뒤 꽃비씨의 취미는 점심시간마다 임원들의 방문을 두드리며 안부를 묻는 거였는데요. 마침 그렇게 친해진 임원 중에 생산라인 본부장이 있었습니다. 같은 직무, 같은 부서도 아닌데, 따로 술자리를 가질 정도로 가까웠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선 바로 그분부터 설득해야 했어요. 만약 일면식이 없었던 분이었다면 쉽지 않았을 거예요. 저랑은 원래부터 친한 사이였으니까, 바로 말씀드릴 수 있었죠. 아니나 다를까, 흔쾌히 오케이를 해주셨어요.”
한창 서로의 ‘식사 친구’가 되어주며 가깝게 지낼 때만 해도, 이렇게 업무적인 이유로 협조를 요청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해요. 마케팅과 생산 사이엔 좀처럼 접점이 없으니까요. 평소에 두루두루 쌓아왔던 사람 재산이 큰일을 도모할 때 요긴히 쓸 수 있는 든든한 잔고가 된 셈이죠. 영업직으로 현장을 뛰던 시절, 용건이 없어도 온갖 이유를 만들어 거래처를 찾았던 습관이 그대로 적용된 결과였습니다. 농사를 준비하며 밭을 갈 듯 미리미리 탄탄하게 다져둔 관계가 결정적 순간에 위력을 발휘한 거죠.
6년 반의 마케팅부 경력을 마무리하고 서른여섯에 ‘지점장’을 달며 영업직에 금의환향했을 때, 꽃비씨가 되새긴 영업의 기본 원칙은 ‘영업은 곧 사람 사이의 신뢰를 토대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흔히 영업사원을 떠올리면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상대방을 잘 구워삶는 사람’이 떠오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여지는 모습일 뿐, ‘필수적인 자질’은 아니라고 해요. 거래로 엮인 사이래도 하루 이틀 보고 말 사이가 아니니까요. 그것보다 중요한 건, 거래처를 ‘동반자’로 여기는 자세와 한번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는 태도라고 합니다.
“영업직으로서의 제 모토는 ‘영업사원이지만 도움이 되는 사람입니다’였어요. 예를 들어 오늘 A 호텔이 5개월 동안 문을 닫고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러면 저는 그 소식을 곧바로 B 호텔, C 호텔에 알리고 ‘미리미리 대비하시라’고 말씀드리죠. 단순한 풍문을 옮기기보단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살을 붙이고 오직 저만 줄 수 있는 정보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고요.” 말하자면 꽃비씨는 영업사원인 동시에 발품으로 정보를 사는 보부상이었던 겁니다 그 정보를 다시 거래처에 팔며 ‘가까이 둘수록 이득이 될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었죠. 오고 가는 정보 속에 파트너십은 더 끈끈해졌고요.
이토록 어렵게 쌓은 신뢰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입니다. 그래서 꽃비씨는 ‘신뢰는 만드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해요. 그 어려운 일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앞서갈 수 있는 나만의 차별화 포인트가 생기는 거고요. “예를 들어 거래처에 100만 원어치의 행사 물품을 지원해 드리기로 했는데 회사 상황이 갑자기 어려워져서 50만 원도 못 쓰는 상황이 와요. ‘회사가 돈 못 대준다는데 어쩌란 말이냐’하고 사장님과 연을 끊어버리면, 그 매장은 영원히 잃는 거예요. 저는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조금씩 쪼개서라도 원래 약속했던 물량을 챙겨 드렸어요. 영업이란 좁은 판에서 하는 거라, ‘다신 안 볼 사이’란 게 없거든요. 다들 고만고만한 물에서 경쟁하는 꼴이라 ‘물량 공세’가 난무하기도 하고요. 달라질 수 있는 포인트는 ‘저 사람은 오래 봐도 믿을 만해’라는 인상을 남기는 거예요.”
서울의 동남권(강남, 서초, 송파, 강동, 성동, 광진) 지역 전체를 관할하는 지점장이 된 지금도, 꽃비씨는 직접 현장에 나갑니다. 지역별 담당 직원이 따로 있긴 하지만 ‘지점장이 와야 대접받는다’고 생각하는 점주들이 많다고 해요. 38도를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도, 영하 20도를 돌파한 강추위 속에서도, 비바람이 몰아치든 눈폭탄이 터지든 그의 일터는 언제나 ‘현장’입니다. 매주 대형 상권의 매장을 찾아가 직접 냉장고 청소를 하고, 노출 효과가 좋은 눈높이 층에 ‘처음처럼’을 가득 채워 넣고 온다고 해요. 강남역 한복판 땡볕 아래 테이블 하나 펼쳐놓고 ‘OO처럼’ 맞춤형 라벨을 만들어주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하고요. 자신의 이름이나 회사 이름을 넣은 ‘OO처럼’ 라벨은 저녁 회식 자리에서 요긴하게 쓰일 뿐 아니라, SNS 인증샷으로도 활약해 톡톡한 홍보 효과를 누리게 해준다고 해요.
얼마 전 신제품 ‘별빛청하’가 출시됐을 땐, 꽃비씨 본인이 직접 직원들을 이끌고 대형 거래처 중 하나인 C 이자카야로 향했어요. “소비자가 직접 냉장고에 가서 제품을 꺼내오는 형태의 술집들이 있어요. 고객의 선택이 그대로 눈에 보이는 곳이니, 우리 술을 왜 고르셨는지,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는지 꼭 물어봐요.” 어떤 현장에 가든 지점장이 직접 뛰니, 팀원들은 몰래 ‘농땡이’ 칠 여유가 없답니다. ‘오늘의 목표가 테이블 100개다’하면 100개를 다 채우기 전까진 집에 못 간대요.
"이 중에서 영업해보고 싶은 사람~?"
취준생 대상 강연에 갈 때마다 꽃비씨가 하는 질문입니다. 해가 지날수록 그 수가 줄어드는 게 못내 아쉽다고 해요. 어떤 일이든 힘든 건 같다지만, ‘품위를 버려가며 철저히 을(乙)이 되어야 하는 일’이라는 인상 때문에 만인의 ‘기피 직종’이 돼 버린 거죠.
“영업직이 3D인 건 맞아요. 사람은 누구나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이를 경계해요. 특히 영업사원은 뭔가를 팔기 위해 다가오는 사람인데 당연히 반갑지 않죠. 그래서 어려운 거예요. 굳게 잠긴 상대방의 마음 빗장을 풀고,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 끝내 ‘내 사람’으로 만들어 내는 게 ‘맨파워(manpower)’예요. 제가 강연에서 꼭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당신이 사회초년생이라면 3~4년 차까지는 꼭 영업을 해봐라.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봤던 회사 중에 영업을 거치지 않고 대표가 된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영업을 한번 해보면요. 사업을 바라보는 시야 자체가 달라지거든요. 사업기획이나, 마케팅을 하더라도 영업 경험이 있는 사람은 ‘현장에 발붙인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장담해요. 제 경험담이거든요.”
어쩌면 영업이란 ‘치트키 쓰지 않고 맨몸으로 세상과 맞붙는 대결’일지도 모르겠어요. 더 센 불에 들어간 철이 더 단단해지듯, 사람들의 매정한 무관심, 냉대, 푸대접에 익숙해진 사람은 어떤 험지에 떨어뜨려도 강인한 기량을 뽐낼 수 있거든요. 실제로 꽃비씨의 좌우명 중 하나는 ‘해보지 않았을 뿐 못할 일은 없다’라고 해요. “일터에서 제 선택은 직진과 전진뿐이에요.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가능성은 적은 게 아니라 0%니까.”
2019년, 서른여섯에 지점장을 달았을 때, 참석했던 첫 회의에서 이런 말을 들었어. ‘유꽃비씨가 팀장이 되어 실망한 사람이 너무 많다’고. 어떤 사람들은 내 면전에서 ‘나도 치마 입고 회사 다녀야겠다’고 말하기도 했지. 잊을만하면 익명 커뮤니티에 은근히 나를 겨냥한 듯한 글이 올라오기도 해. “저분보다 묵묵히 일하는 사람도 많습니다”라고 말이야. 내 팀원들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PR하는 걸 두고 못마땅해하는 사람들도 있어. 부당한 조치에 맞서 ‘이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꼬운 거야. 언제는 ‘성공하고 싶어 시끄럽게 나댄다’고 하더니, ‘불러주는 곳이 많아 미련이 없다’는 말까지 나와. 욕하는 사람들끼리 앞뒤도 안 맞는다니까.
근데 신기한 게 어느 순간부턴가 그런 말들이 그다지 속상하지 않은 거야. 비방을 서슴없이 뱉어내는 사람들을 골똘히 지켜보니 공통점이 있더라고. 승진의 ‘시옷’조차 구경할 일이 없어서, 가만히 있어도 자꾸 떠밀리는 것 같아 불안한 사람들이었던 거지. 본인이 갈 수도 있었을 자리를 내가 빼앗아 갔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게 아닐까? 애석한 건, 나는 남들이 그럴수록, 풀이 죽긴커녕 더 투지를 활활 불태운다는 거야. 왜냐. 난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회사 다니는 게 아니거든. 회사에서 내가 무겁게 진 책임은 딱 하나야. 내 팀원들이 마지막까지 기댈 수 있는 단 한 사람, ‘든든한 팀장’이 되어 주는 거.
그러니까, 뒤에서 저 욕하시는 분들, 본인 입만 아프실 거예요.
흔히 조직에서 일 잘하는 여성, 그 유능함을 숨기지 않은 여성은 ‘마녀’로 통합니다. 남성의 유능함은 '야심'으로 추앙받지만, 여성의 유능함은 꽤 자주 '욕심'으로 치부되거든요. 꽃비씨가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10살 이상 많은 남성 선배들과 어깨를 견주는 ‘지점장’을 달았을 때,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그를 지켜봤다고 해요. ‘너 어디 한번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고요.
“저를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은 제가 뭘 해도 똑같이 볼 거기 때문에 바꿀 생각이 없어요. 단호한 무관심으로 일관할 뿐이죠. 오케이, 네가 나를 싫어하는 건 어쩔 수 없어. 근데 수를 써서 내 앞길을 방해한다? 그럼 절대로 좌시하지 않죠. ‘불이익은 참지 않는다’는 게 제 좌우명이거든요. 제가 원래도 순한 양은 아니었지만, 그런 상황들이 독한 저를 더 독하게 만드는 거 같아요.”
팀장이 좋은 사람인 척할 때 팀원들만 힘들어진다는 사실, 조직 생활을 해본 분들은 아마 다들 공감하실 거예요. 윗선의 부당한 지시를 끝내 거절하지 못해 넙죽 받아오는 물러터진 팀장보단 ‘싸움닭’처럼 싸워서라도 자기 몸으로 방어선을 구축해주는 팀장이 백번 천번 낫죠. 팀장이 된 꽃비씨는 한층 더 독해진 전투력으로 ‘윗선을 들이받는 잔 다르크’가 됐다고 해요. 내 팀원들 앞으로 떨어지는 불리한 패를 털어내기 위해 지치지 않고 싸우죠. 오죽하면 그의 직속 후배들이 ‘그렇게 싸우다 윗사람 미움 받지 말고, 적당히 받드는 시늉이라도 하시라’며 말릴 정도라고 해요. ‘윗사람 눈치’보다 ‘아랫사람 눈치’를 살피는 것에 더 열심히라고 하니, 확실히 그는 ‘팀장의 일’에 진심인 사람입니다.
꽃비씨가 이토록 ‘팀장 노릇에 진심’일 수 있었던 건, 수십 명의 상사를 모시며 꼬박꼬박 ‘타산지석 오답 노트’를 써왔기 때문이래요.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지’ 싶어서 소름이 돋는 팀장을 만나면, 그의 특성을 유심히 살펴보며 데스노트를 만들 듯 ‘낫투두(not –to do) 리스트’를 썼답니다. 반면 ‘저게 리더구나’ 느끼게 하는 팀장에게선 장점만을 쏙쏙 뽑아 열심히 흡수했고요.
“제가 겪어본 팀장 중엔 ‘보신주의자’가 가장 싫었어요. 일례로 이런 사람이 있었죠. 처음처럼이 한창 잘 나가던 무렵,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겠다’ 싶어서 새로운 기획안을 많이 만들었어요. 당시 상사는 ‘충분히 잘나가는 와중에 모험했다 실패해서 분위기 안 좋아지면 어떡하냐’고 하더라고요. 반대로 시장 점유율이 떨어져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역시 똑같은 이야기로 프로젝트를 반려했어요. ‘지금도 충분히 위기인데 상황이 더 악화되면 어떡하냐’면서. 이래도 싫다 저래도 싫다 하는 분들은 그냥 ‘현상 유지’만 하길 원해요. 뭐든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싫은 거죠.”
‘팀원은 적극적으로 일하고 책임은 팀장이 지는 팀이 일류다’.
보신주의자들을 반면교사 삼아 꽃비씨가 세운 신조라고 해요. 그래서 그는 팀 예산을 인원수대로 동일하게 배분하던 관례를 바꾸었죠. 열의가 높아 계속 일을 벌이는 팀원에겐 추가 지원이 들어갈 수 있게끔 관행을 손봤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팀원에게는 관리자 예산을 더 배분했어요. 기회가 생기니까 성취욕 강한 직원들은 더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더라고요. 반드시 몸으로 부딪혀 봐야만 알게 되는 것들이 있거든요. 실패해도 좋으니 해보면서 배우라고 했어요.”
물론 꽃비씨의 일터에 ‘최강 빌런 상사’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두고두고 곁에 두고 배우고 싶은 상사 역시 적지 않았다고 해요. 꽃비씨는 예리한 눈썰미로 엑스레이 찍듯 탁월한 일잘러들의 비급을 분석했어요. 그들만의 ‘고단수 원칙’이 무엇인지 파고들었죠. 그중 하나가 ‘어떤 정보든 평등하게 공유한다’였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며 정말 많은 임원을 모셔봤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분이 있는데요. 그분은 고위급 회의에서 나오는 정보를 누구보다 빠르게 실무자들에게 전달해줬어요. 임원들이 좀처럼 하지 않는 일인데, 이분만 달랐죠. 회사 업무는 무척 유기적이어서, 실무진도 전체 그림을 알고 있어야 더 발 빠르게, 더 정확하게 움직일 수 있거든요.”
팀장이 된 꽃비씨 역시 자신이 아는 정보를 최대한 신속하게 팀원들에게 공유한다고 해요. 어깨 너머 배운 대로 써먹는 중이죠. 회사라는 곳에 워낙 ‘카더라’ 통신이 많은지라, 직급이 낮고 어린 직원일수록 풍문에 동요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그는 부정적인 내용이든, 긍정적인 내용이든 그들이 잘못된 정보에 불안해하지 않도록 ‘가장 먼저’ 공유한다고 해요. “팀원들한테 맨날 이야기해요. ‘여러분~ 무슨 일이 생기든 제가 가장 먼저 알려주잖아요? 그러니까 저를 믿고 여러분은 하던 일만 잘하면 됩니다~’”
밥벌이 15년 차, 입사하는 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꽃비씨는 ‘무리 안에 숨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해요. 수백 명이 모인 사원 워크숍 자리에서도, 전국의 지점장이 모이는 관리자급 회의에서도 그는 언제나 ‘단 한 명의 여성’이었습니다. 어떤 행동을 해도 눈에 띄는 만큼, 손쉽게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화제의 인물’이었죠. 그에게 선택지는 두 개뿐이었다고 해요.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끝까지 남아있는 사람이 되느냐, 일찌감치 열외로 빠지는 사람이 되느냐.
꽃비씨는 전자를 택했습니다. 회식 때마다 “좀 가라! 제발 가!”라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악착같이 자리를 지켰죠. 15년 동안 한 회사를 다니며 그가 쉰 시간은 고작 9개월. 첫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벌떡 일어나 현장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남자들끼리 남고 싶어 하는 눈치가 은근히 짙어질 때도 독하게 자리를 지켰죠. ‘쟤도 어쩔 수 없는 여자네. 역시 여자들은 어쩔 수 없어.’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았대요. 그가 자갈밭을 험하게 뒹구는 동안, 그의 뒤를 따르는 여성 후배들은 하나둘 늘어갔습니다. 후배들이 걷는 길이 ‘꽃길’까진 아니어도 자갈밭보단 나은 모랫길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꽃비씨는 줄곧 이 길을 앞장서 왔습니다. 비바람이 불어도, 피눈물이 흘러도, 꿋꿋이, 포기하지 않고 말입니다.
그의 영업용 차량 암레스트엔 휴지가 한 움큼씩 꽂혀 있습니다. 오롯이 혼자만의 공간인 차 안에 남겨져야, 꾹꾹 눌러 담았던 울분이 터진대요.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붙잡고 간신히 집 주차장에 들어서면 그제서야 눈물이 흐릅니다. “혼자 울기에 차만큼 적당한 장소가 없는 거 같아요. 남편과 아이에게 회사에서 쌓인 감정을 들키지 않도록, 여기서 다 풀고 가죠.”
한바탕 울고 맞은 다음 날 아침, 출근길의 주문이 되어 주는 건 학교 가는 아들에게 매일같이 하는 말입니다. “엄마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러 회사에 가는 거야.” 꽃비씨는 아들에게 단 한 번도, ‘엄마 돈 벌러 회사 다녀올게’라고 말한 적이 없대요. “실제로도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으니까요. 아들 앞에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직업인이고 싶어요.”
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험지에서 15년을 살아남은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몇 년 전 저희 대표이사님과 식사를 하는데, 그분이 이렇게 말씀한 적이 있어요. ‘유꽃비 팀장은 언젠가 이 회사의 최초 여성 대표이사가 될 거야’라고요. 민망스러울 정도로 큰 칭찬이라, 당시엔 넉살 좋게 웃어넘겼는데… 실은 가슴이 너무 벅찼어요. 그날 이후론, 누구에게 어떤 꼴을 당해도 크게 속상하지가 않은 거예요. 백 명, 천 명이 나를 등지고 오해해도 괜찮다. 나를 믿어주는, 딱 한 사람만 있다면. 그 말이 저를 일으켜 세운 거 같아요.”
무성한 뒷말 가운데에서도 나를 믿어준 단 한 사람의 단 한마디. 그 말은 오늘도 꽃비씨를 움직이는 동력원이 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일의 재미’에 대해 물었습니다.
“방송에 나가고 나서 ‘왜 이직 안 하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이유는 하나예요. 저에게 ‘처음처럼’은 정말 자식 같은 존재거든요. 현장에서 아무리 서럽고 힘들어도 내가 여기서 한 발짝만 더 가면 다 ‘처음처럼’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걸 믿어요. 그래서 단 한순간도 대충 한 적이 없어요. 솔직히 요즘처럼 너무 더울 때는 ‘여기까지만 하고 들어가서 좀 쉴까’ 타협하고 싶은 순간도 와요. ‘아니야, 한 군데만 더 가자’면서 움직이다 보면 순식간에 서른 곳, 마흔 곳을 더 돌아요. 회사에서 예쁨받으려고 하는 일이면 이렇게 못해요. 정말 ‘처음처럼’을 사랑해서 한 일이죠.”
딱 한 곳만 더 가자, 딱 하루만 더 잘해보자, 그렇게 마음먹으며 꽃비씨는 ‘최초’라는 무거운 명예가 그의 이름 앞에 화려하게 수놓인 오늘에 닿았습니다. 그에게 ‘최초’라는 말은 감사하지만 가장 소중한 타이틀은 아니라고 해요. 그의 목표는 ‘최초’를 넘어 ‘최후(last one)’가 되는 것이니까요.
“저에게는 ‘최초’였던 것보다 소중한 꿈이 있어요. 바로 ‘최장기 여성 영업사원’이 되는 거죠. 최초는 100% 내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지만, 최장기는 오롯이 나만의 내력으로 얻은 거니까. 일을 오래하고 싶어요. 일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곳으로 확장해 나가는 저를 보거든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기회를 누려요. 남들은 마흔쯤 되면 사는 게 무료할 정도로 하강 곡선을 탄다는 데, 저는 지금부터 시작되는 인생의 후반전이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너무 기대가 돼요.”
‘독기’라는 말에 깃든 부정적 함의가 무색할 만큼, 이 사람 유꽃비가 보여주는 독기는 남다릅니다. ‘좀처럼 기가 죽지 않는 신입’, ‘좀처럼 주눅이 들지 않는 영업직’이었던 그가 가진 건, 좀처럼 물러지지 않는 단단한 마음과 좀처럼 꺾이지 않는 건강한 독기. 그 건강한 독기를 연료 삼아 꽃비씨는 오늘도 신발 밑창이 다 닳도록 현장을 누빕니다.
▶ 유꽃비의 일잼포인트 '회사에서 센스있게 PR하기' 읽으러 가기 (관련기사 ②)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7261443000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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