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의 저자인 박주영 판사가 세상이란 법정의 경위가 되어 숨죽인 채 엎드린 진실과 정의를 향해 외친다. 일동 기립(All rise)!
마약사건은 밀고에서 시작된다. 자신에게서 약을 샀다는 증인을 앞에 두고 피고인은 "뽕쟁이 말은 전부 거짓말입니다"라고 핏대 세운다. 재판은 입만 열면 거짓말하는 두 '뽕쟁이' 중 누구 말을 믿을 것인가와의 한판 싸움이다. 피고인과 증인 모두 믿지 못하면 무죄다.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한다. 이 원칙이 없다면 재판은 동전 던지기나 마찬가지다.
기억에 남는 마약사건이 있다. A는 중국의 C로부터 한국에 있는 필로폰 500g을 처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특진을 노리던 형사 B에게 연락해 함께 거래장소인 카페로 갔다. 잠시 후 박스를 든 남자가 들어오더니 "A씨가 누굽니까, 중국에서 택배가 왔습니다"라고 외쳤다. B형사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카페에 있던 남자들에게 다가가 신원 확인을 요청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부산지방검찰청 마약수사관이었다. A는 그 자리에서 마약 밀반입으로 긴급체포됐고, B형사 역시 공범으로 입건됐다.
이 사건은 위장거래를 뜻하는 마약세계의 일명 '던지기' 사건으로, A와 B형사, C와 부산지검 측이 서로 함정을 판 특이한 경우였다. A가 불운했던 건 자신의 뒤를 봐준 쪽은 경찰인데, C의 뒤를 봐준 쪽은 힘이 더 센 검찰이었다는 점이다. A는 법정에서 "위법한 함정수사에 역공당한 것"이라고 억울해했지만 소용없었다. 대법원은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만 위법으로 보는데, 원래 있는 범의를 이용했는지(적법), 없던 범의를 유발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실무상 대단히 어렵다.
미국의 변호사이자 28세에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된 앨런 더쇼비츠의 책 'Letters to a young Lawyer'에는 미국 형사재판의 실제 작동 모습을 13가지 규칙으로 설명한 부분이 나온다. '규칙1 피고인 대부분은 실제 유죄다. 규칙2 모든 변호인과 검사와 판사는 규칙1을 알고 있고 이를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 규칙6 많은 검사는 유죄 평결을 받기 위해 경관이 헌법위반에 관해 위증할 것을 암묵적으로 부추긴다. 규칙7 모든 판사는 규칙6을 알고 있다. 규칙8 대부분의 1심 판사는 거짓말하는 경관을 믿는 척한다. 규칙9 모든 항소심 판사는 규칙8을 알고 있다. 그러나 많은 항소심 판사는 거짓말한 경관을 믿는 척한 1심 판사를 믿는 척한다. 규칙13 실제로는 누구도 정의를 원하지 않는다.' 더쇼비츠는 이 규칙을 일컬어 '저스티스 게임'이라고 불렀다.
'크레타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크레타사람이 말했다'는 역설을 '러셀의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가만히 보면 이 역설은 원소(한 명의 크레타사람)가 집합(크레타사람 전체)을 언급함으로써 발생한다. 따라서 역설의 모순을 피하려면 원소가 집합을 언급해선 안 된다. 이를 지키지 않는 이상 그 명제는 무의미하다. 이런 결론이 버트런드 러셀의 해법이다(유형이론).
"전관예우는 없다고 한 판사가 말했다. 제 식구 감싸기는 없다고 어떤 검사가 말했다"고 아무리 떠들어 봐야 귓등으로 듣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러셀의 해법은 수학이 아닌 현실에선 별 효용이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 화자만 슬쩍 빼버림으로써 문제를 우회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화자가 자신만 빼고 남을 평가한다면 결국 남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내로남불은 원칙의 포기이고,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할 뿐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 역시 위 사례들과 흡사하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마약을 던지듯 서슴없이 법과 정의를 내팽개치고, 전부 원칙을 어기면서도 자신이 판 함정에는 정당한 목적이 있다고 다들 믿는 척한다. 그러나 모두가 위법하면 그 누구도 잡을 수 없고, 타인의 불법으로 자신의 불법을 가릴 수도 없다. 원칙이 사라진 법정에는 정의를 흉내 낸 게임만이 난무한다. 모두 거짓말쟁이라 말하는 크레타사람과 뽕쟁이와 우리 모습이 많이 겹쳐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우리가 의지할 진실한 크레타사람은 존재하는가, 그는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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