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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12월3일
IMF사태, 대한민국 정부 구제금융 협상 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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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DB 속 그날의 이야기. 1954년 6월 9일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일보 신문과 자료 사진을 통해 '과거의 오늘'을 돌아봅니다.
1997년 12월 3일 서울 정부종합청사에서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과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정책 의향서에 서명 후 캉드쉬 IMF 총재에게 전달한다. IMF체제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날이었다. 당시 한국일보는 이를 '경제 국치(國恥)의 순간'으로 기록했다.
(※ 1997년 12월 4일 지면 보러 가기 ☞ www.hankookilbo.com/paoin?SearchDate=19971204 링크가 열리지 않으면 주소창에 URL을 넣으시면 됩니다.)
1월 23일 한보철강 부도를 시작으로 국가부도 위기로 치닫던 1997년 11월 16일, 미셸 캉드쉬 IMF 총재 일행이 가명으로 정체를 감춘 채 극비리에 입국한다. 이들은 서울시내 호텔에 머물며 구제금융을 전제로 정부 관계자와 조건 등에 대한 협의를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구제금융 신청은 절대 없다"고 했으나, 5일이 지난 11월 21일 구제금융 신청 방침을 발표한다. 12월 3일에는 이행각서가 전달되면서 IMF체제는 공식적으로 시작된다.
이후 전국민적인 금모으기 운동 등 뼈를 깎는 노력이 이어졌다. 그리고 2001년 8월 23일 10시 30분, 전철환 당시 한국은행 총재가 IMF 차입금 가운데 잔액 1억4,000만 달러를 상환하는 최종 상환 서류에 결재한다. 이에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이후 IMF로부터 빌린 195억 달러를 당초 예정보다 3년가량 앞당겨 상환, IMF체제에서 조기졸업을 하게 됐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39억 달러로 급감했던 외환 보유액은 2021년 10월말 4,692억1,000만 달러로 늘었다. 규모 면에서 중국, 일본, 스위스, 인도, 러시아. 대만, 홍콩,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9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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