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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이 “칸에서 자랑스러웠다”고 했던 이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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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배우의 덜 알려진 면모와 연기 세계를 주관적인 시선으로 전합니다.
배우 이정재는 칸영화제 레드 카펫을 한차례 밟았다. 2010년 영화 ‘하녀’를 통해서였다. ‘하녀’ 직전까지 그의 연기 이력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태풍’(2005)은 관객 동원(347만 명)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1724 기방난동사건’(2008)은 28만 명만이 봤다. 영화들에 대한 평이 딱히 좋지 않기도 했다.
이정재는 ‘하녀’로 재도약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며 이름값을 높인 면도 있지만 이전과는 다른 면모를 스크린에서 보여줘서다. 이정재는 재벌로 추정되는 집안의 젊은 주인 훈을 연기했다. 세련된 매너와 유쾌한 성격, 친절한 태도를 지닌 그는 알고 보면 야비한 인물이다. 자신의 집에 일하러 들어온 여인 은이(전도연)와 관계를 맺고 이후 냉정하게 외면한다. 영화는 훈이 이전에도 그런 일들을 종종 벌인 것을 암시한다.
‘하녀’ 이전까지 이정재는 영화 속에서 주로 ‘멋짐’을 담당했다. ‘오! 브라더스’(2003)에서 흥신소 직원을 연기하며 비릿한 면모를 보여주긴 했어도 강건한 해군 장교(‘태풍’)이거나 민완 형사(‘흑수선’), 반란 지도자(‘이재수의 난’) 등 영웅적인 모습을 주로 그리곤 했다. 또는 사랑의 급류에 휘말린 비운의 주인공(‘정사’ ‘시월애’)이었다. 건장한 몸은 액션 연기를, 연약해 보이는 턱선과 살짝 아래로 향한 눈꼬리는 멜로 연기를 가능토록 했다.
‘하녀’ 이후 이정재는 선악의 경계에서 악으로 기운 역할들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도둑들’(2012)에선 은행털이 일행을 배신하는 뽀빠이, ‘암살’(2015)에선 독립운동가와 일본 헌병 사이를 오가는 밀정 염석진을 각각 연기했다. 젊은 세대에까지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린 ‘관상’은 어떤가. 냉혈한 야심가 수양대군은 적은 출연 분량에도 이정재의 강렬한 연기 덕에 영화의 중심을 차지했다. 이정재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에서 악의 결정체 같은 인물 레이를 연기했다. 이정재표 악역 연기는 ‘하녀’로부터 출발했다고 본다.
연예계는 외모지상주의가 지배하는 세계다. 배우들은 특히 그렇다. 외모가 빛나지 않는 배우는 발군의 연기실력이 없으면 생존하기 어렵다. 이정재는 연예계라는 먹이 피라미드의 최상층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큰 키와 잘생긴 얼굴 덕분이다.
이정재의 데뷔작은 영화 ‘젊은 남자’(1994)다. 이정재는 연예인으로 성공하고 싶은 3류 모델 이한을 연기했다. 이한이 근사하게 차려입고 시가를 피우며 카메라를 바라본 채 독백하는 장면이 있다. 그는 “넌 돼! 되게 돼 있어!”라고 자기 최면을 건다. 이 대목은 이정재 본인이 스크린 밖 자신에게 말하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막 출발선에 선 저 젊은 배우는 누가 봐도 ‘되게 돼 있어’ 보인다.
다시 ‘하녀’ 이야기. ‘하녀’에서 함께 연기한 윤여정은 2012년 5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10년 칸영화제를 돌아보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느 파티에 갔는데 (이)정재가 얼마나 대견했는지 몰라요. 마틴 스코세이지, 팀 버튼 감독 등이 오고, (할리우드 배우) 제니퍼 로페스 등도 왔어요. 정재가 (할리우드 배우들보다) 훨씬 멋있어서 ‘저기 가서 왔다 갔다 해’라고 했어요. 자랑스러웠죠.”
외모는 배우에게 강력한 무기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대중은 근사한 얼굴을 지닌 배우들에겐 인내심을 발휘하고는 한다. 연기를 잘할 때까지 기다려 주나 매번, 영원히, 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정재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정글보다 더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계, 연예계에서 만 27년을 활동하며 살아남았다. 연기력이 지지대였다.
이정재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성공을 맛보고 있다. ‘오징어 게임’의 기훈은 이전 이정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기훈의 얼굴에는 신산한 세월이 새겨져 있다. 비루한 인물을 연기해도 이정재의 외모가 망가진 적은 없다.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가 특별한 이유다. 전 세계적인 신드롬과 무관하게 이정재는 새로운 연기 영역으로 진입했다. 오십을 코앞에 둔 그의 행보가 더 흥미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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