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재난지원금이 던지는 질문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소득 하위 88% 국민에게 지급되고 있는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된 사람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지난주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이의신청만 11만 건을 상회한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간 형평성 논란이 있는 건강보험료가 지급기준이 되면서 예견됐던 상황이다. 온라인에는 이런 세태를 풍자하듯 신라의 골품제에 빗대 재난지원금을 얼마나 받는지에 따라 국민을 노비와 평민으로 나누고, 받지 못하는 이들은 그 이유에 따라 6두품-진골-성골로 분류한 표까지 떠돌아 다닌다. 국민 사이를 갈라놓고 국가 행정에 대한 불신까지 키워 놨으니 ‘코로나 상생(相生) 국민지원금’이라는 재난지원금의 공식 명칭이 무색할 지경이다. 폭주하는 이의신청 때문에 “90%까지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허겁지겁 뒷수습에 나선 여당의 좌충우돌은 점입가경이다.
받는 사람을 선별하지 않는 기본소득을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번 사태에 대해 “지금이라도 전 국민 보편지급을 해야 한다”고 말을 보탰다. 기본소득은 재원조달 문제, 근로의욕 상실 등 여러 비판에 직면해 있는데 ‘선별 논란’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재난지원금이 이런 비판을 잠재울 수도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자연스럽게 복지정책의 방향성을 둘러싼 논쟁도 시작됐다. 14일 TV토론에서 이낙연 전 대표는 이 지사에게 “보편복지 국가로 가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철회해달라”고 기본소득 공약 폐기를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지향점은 ‘보편적 복지국가’이지만 이 전 대표의 '신복지'는 선별기능이 강한 프로그램(기초생활보장제도 강화)과 선별기능이 없는 프로그램(아동수당 확대, 청년수당 도입 등)의 결합을 불가피하다고 본다. 반면 이 지사는 기본소득이나 기본대출처럼 선별기능이 없거나 미약한 프로그램의 도입과 확대를 보편적 복지로 여긴다. 전통적 복지론자들은 대체로 전자를, 일반인들은 조건을 덜 따지고 제도가 간결한 후자를 보편적 복지로 인식한다. 결론이 궁금해지는 논쟁이다.
만약 이 지사가 본선에 진출한다면 10년 전 전면적 무상급식 도입으로 촉발됐던 ‘보편복지 대 선별복지’ 논쟁도 다시 불붙을 가능성이 높다. 보편복지 프로그램인 이 지사의 기본소득에 맞서 윤석열, 유승민 등 야당의 주요 대권주자들은 현금성 수당을 폐지하고 저소득층을 타깃으로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선별적 소득보장제도(‘부의 소득세’)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 뜨거웠던 복지 논쟁은 당시까지 시혜로 여겨지던 복지를 시민적 권리로 인식전환하게 한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동시에 ‘보편복지’를 ‘무상복지’로 오해하게 하면서 보편적 복지국가 구현에 필수적인 증세에 대한 수용성을 낮췄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사이 국민들은 다양한 복지제도의 효용성과 한계를 체감하게 됐다. 보편복지는 지향해야 할 모델이고 선별복지는 배척해야 할 모델이라는 식, 혹은 그 반대로 인식하는 이분법적 논쟁이 허구라는 점도 깨닫게 됐다.
2차 대전 이후 영국의 복지국가로의 도약은 전쟁 중에도 영국이 전후에 어떤 모습이 돼야 할지를 놓고 국민들이 끊임없이 토론하고 고민한 결과물이었다.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가 출간됐을 때 이를 구입하기 위해 몰려든 인파의 줄이 수km였다고 한다. 국민들의 고민과 토론 없이 짓는 복지국가는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 보편적 복지국가인가, 선별적 복지국가인가. 보편적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선별기능이 있는 복지제도를 수용할 것인가 아닌가.’ 재난지원금 이의신청 사태는 외면해서는 안 될 중요한 질문들을 던진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