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박원순 피해자, 민주당 성폭력 시인 없이는 용서할 수 없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2차 피해 심각, 멈춰달라"
"박영선, 성범죄·성추행 등 단어 빠진 채 사과만"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故)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18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A씨에 대해 "2차 가해, 2차 피해 심각하게 진행 중"이라며 "피해자가 신변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전날 A씨의 기자회견에 동석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이 교수는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피해자가 서울시 복직을 앞두고 이렇게까지 직접 나서서 호소하는 데에는 아마도 불안감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지금 피해자의 제일 심각한 문제는 2차 가해행위, 2차 피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만일 복직을 하게 되는 경우 2차 피해를 유발했던 사람들이 그대로 다 있을 수가 있지 않겠느냐"며 "그러면 아마 계속 근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아니면 근무를 하려고 의지를 갖더라도 지속적으로 2차 가해에 노출될 것이 아마도 두려웠던 것 같다"고 A씨가 기자회견에 직접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전날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피해자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춰달라"며 "왜 괴로움을 삭감한 채 희롱이란 용어로 대변하고, 괴로운 사람이 괴롭다고 호소하는 데 왜 '피해호소인'이라고 부르는가"라고 비판했다.

서혜진(왼쪽에서 세 번째)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변호인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이수정(오른쪽에서 두 번째)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동석했다. 사진공동취재단

A씨 역시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여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A씨는 "더불어민주당이 피해호소인이라는 명칭으로 저희 피해 사실을 축소·은폐하려고 했고, 당원 투표로 결국 서울시장 후보를 냈다"면서 "저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명명했던 의원들이 직접 저에게 사과하도록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따끔하게 혼냈으면 한다"고 남인순 민주당 의원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피해자냐 피해호소인이냐 하는 걸 놓고도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누구도 성적인 괴롭힘을 받은 자신의 괴로운 부분을 인정 안 해주는 듯한, 그 부분(성추행)은 그냥 덮고 (민주당이) 부적절한 일이었으니 사과한다고 하니 진정한 사과라고 여기질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단 (민주당이) 시인을 먼저 해달라는 것"이라며 "용서를 하고 싶은데 뭘 잘못했는지 명확하게 인정을 해줘야 용서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용서조차 할 기회가 지금 사라졌다는 게 피해자가 발언한 제일 첫 번째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박영선 후보, 두 번이나 사과했지만....

여권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단일화 경선 결과를 발표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앞서 박영선 후보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자신의 선거 캠프 사무실에서 "피해 여성께 다시 한번 진심 어린 사과를 제가 대표로 대신 드린다"며 처음으로 박 전 시장의 피해자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박 후보는 "피해자분께 조속히 일상으로 돌아오실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다"며 "피해자가 우리의 사과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시점이 있을 것이다. 그때 직접 만나 대화를 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박 후보의 사과에 대해 "사과문을 보면 그 어디에도 성범죄나 성희롱, 성추행이나 그런 용어를 썼었나"라며 "결국 그게 지금 피해자는 인정받고 싶은 부분인데, 그런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는 게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는 "성범죄 피해자들이 인정받고 싶어하는 건 본인이 그 행위로 인해서 정말 고통스러웠다는 것인데, 성범죄 피해자라는 걸 인정해주지 않고 유감이다라는 사과가 그게 사과로 느껴질까"라고 역설했다.

이후 박 후보는 A씨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또다시 입장을 표명했다. 박 후보는 "박 전 시장 피해자의 기자회견이 있었고, 참 힘든 하루였을 거라 생각한다"며 "얼마나 생각이 많으셨겠느냐. 진심으로 위로를 전한다"고 썼다.

박 후보는 "회견에 제 이름이 언급됐다"며 "제가 진심으로 또 사과드리고 용서도 받고 싶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저희 당 다른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두 제게 해달라"며 "제가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박 후보의 두 번째 사과문에도 이 교수가 지적한 대로 성범죄나 성추행 등의 단어 없이 피해자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가 생략돼 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