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에게 정치는 몸에 잘 맞지 않는 옷
정치인, 선의뿐 아니라 능력ㆍ책임감 갖춰야
보궐선거ㆍ대선 출마자 스스로 자질 되묻길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5년차에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는 것이 국정 성과나 소통 능력에 대한 평가라고만은 보기 어렵다. 소탈하고 진지한 말투 등 정치적이지 않은 행동에서 호감을 느낀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반대 진영에선 “겉과 속이 다른 두 얼굴”이라는 식으로 폄하하나 선한 이미지가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취임 이후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보면 그에게 정치는 여전히 잘 어울리는 옷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특히 사람을 쓰는 데서 권력자의 냉철함이 부족한 건 정치 지도자로서 간과할 수 없는 결점이다. 능력을 중시해야 할 자리에는 내 사람을 심고, 정작 코드 인사가 필요한 권력 핵심 기관에 정반대 성향의 사람을 앉힌 것은 큰 패착이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고 나서 “문재인 정부 사람”이라고 수습한들 달라질 건 없다. 정치 리더로서 갖춰야 할 현실을 꿰뚫는 통찰력 부족은 부동산 일자리 등 핵심 정책의 실패로 이어졌다.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그의 약한 권력 의지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정치인에게 권력 의지란 시회 발전과 시민의 삶을 낫게 만들겠다는 신념의 표출이다. 자신이 왜 정치를 하고, 해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소신이 바로 권력에 대한 의지다. 우리 정치사에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만큼 권력 의지가 강했던 인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고, 원해야 할 수 있는 게 정치다.
서울시장 선거와 대선을 앞두고 새 인물을 찾느라 발품을 판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모든 선거는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오랜 정치 경험에서 나온 확신에서다.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 선두권을 형성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별의 순간’은 한번밖에 안 온다. 본인 스스로 결심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에게 떠밀려 정치권에 나온 사람이 그 험난함과 고단함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좋은 정치인이 본인의 의지와 욕구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과 사회에 대한 철학과 의지, 전문성을 갖추지 않고는 국민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올해로 정치 입문 10년째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목표치를 계속 낮출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내걸었던 ‘새 정치’를 여태껏 보여주기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오세훈, 나경원, 박영선 등 여야의 다른 후보들도 이미 국민으로부터 정치적 평가를 받은 인물들로, 과거에서 맴돌고 있다. 한때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윤 총장이 추미애가 사라지자 주저앉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정치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빈곤과 불평등 같은 사회 문제를 개선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 그러기에 정치인에게는 열정으로 가득 찬 ‘신념윤리’만이 아니라 고도로 훈련된 ‘책임윤리’가 뒷받침돼야 한다.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의 말을 빌자면 “정치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어서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놓을 수는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자리에 걸맞은 능력과 책임감이 결여된 정치인, 권력자가 너무나 많다.
전국 선거가 잇따를 올해와 내년, 많은 인물이 나라를 바꾸겠다며 정치에 뛰어들 것이다. 하지만 정치를 업으로 삼으려면 스스로에게 사회를 이끌 비전과 철학이 있는지, 단순히 선의만이 아닌 리더십과 실행플랜이 있는지, 지지자에게도 바른 말을 할 용기가 있는지를 거듭 물어야 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6년째 집권을 이어가는 데는 소탈하고 포용적인 ‘무티(엄마) 리더십’이 크게 작용했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실용적 보수를 가치로 불평등, 기후위기 등 새로운 의제를 끊임없이 제시하고 해결책을 모색한 게 생명력이다. 누구나 해도 되는 게 정치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게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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