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미국이 시끌벅적하다.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연방의회에 난입했고, 민주당은 일주일 후 기어이 연방하원에서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그 사이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했고, 연방상원은 오는 2월 9일부터 전직 대통령 탄핵안을 심리할 예정이다. 공화당의 앞날이 풍전등화다.
위기에 처한 공화당의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헌법적 질서'를 무너뜨린 극우 세력으로부터 전통적 보수를 구하고 '합리적' 보수로 돌아가자는 주장이다. 공화당 지지자의 40% 정도가 선거부정이 있었다고 아직까지 믿고 있는데, 이들을 설득해서 포스트 트럼프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이 주장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1월 13일 연방하원에서 탄핵안을 표결할 때 찬성한 공화당 의원은 고작 10명뿐이었다. 전체 211명 중 5%도 채 안된다. 1월 26일 연방상원에서 탄핵안 심사 전 절차에 대한 표결을 했는데, 5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만 트럼프 반대진영에 섰다. 재빨리 트럼프를 털어내기는 커녕 그를 감싸는 모양새다.
오히려, 공화당의 주도권은 이미 넘어간 듯 보인다. 연방하원의 공화당 원내대표와 부대표 모두 친트럼프 계이고, 연방상원에서는 테드 크루즈 의원과 조시 하울리 의원 등이 트럼프의 후계자로 부상했다. 반트럼프 성향의 상하원의원들을 공격하는 정치광고가 만들어 지고 있으며, 벌써부터 내년 중간선거 당내경선(primary elections)에서 이들에게 도전할 후보들이 나오고 있다.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주정부들도 행동에 나섰다. 불법이민자 강제추방을 유예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텍사스주가 반대 소송을 냈고 1심에서 승리했다. 트럼프 정책 되살리기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트럼프 정책 중 '바람직한' 것들 위주로 발전시켜 공화당의 체질 개선을 도모하자고 주장한다. 인종차별주의는 거부하되, 중하층 미국인들을 공략한 경제정책은 계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보수적 포퓰리즘(conservative populism)'이라고 불리는데, 공화당의 미래를 바라보는 두 번째 시각이다.
사실 트럼프가 지난 4년간 공화당의 미래에 던져준 교훈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화당 지지자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전통적 보수주의 경제철학을 신봉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시장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의 가치를 믿는 이데올로기를 거부했고, 재정균형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지지는 오히려 증가했다. 또, 트럼프는 새로운 포퓰리즘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도 보여 줬다. 거짓말이 섞여 있어도 통했고, 정책적으로 그다지 성공하지 않아도 통했다.
공화당 출신 전임 대통령들을 살펴 보아도 유사한 점이 눈에 띈다. 레이건, 아버지와 아들 부시 모두 대통령이 된 이후의 경제정책은 의회 내 공화당보다 항상 '좌'측에 위치했었다. 표면적으로는 재정건전성을 내세웠지만, 이들 공화당 출신 대통령하에서 정부 재정적자가 불어난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부자들만의 정당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날 토양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저소득층 노동자를 공략해서 공화당의 새로운 지지기반으로 영구히 끌어들일 수도 있다. 2020년 선거에서 흑인과 히스패닉의 트럼프 지지율이 유의미하게 증가한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앞으로 공화당이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세금감면 일색의 과거 전략에서 벗어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이에 '큰 정부(big government)'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일반 국민들에게는 '큰 혜택(big cash)'으로 느껴질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자는 공화당 내부의 움직임은 그냥 흘려 보내기 힘든 뉴스다.
물론 극복이 쉽지 않은 이슈들도 있다. 이번 의회난입 사건으로 망가진 '법과 질서'의 정당 이미지를 재빨리 회복해야 할 것이다. 인종을 직접적인 타깃으로 공격해 온 선거전략도 수정해야 한다. 트럼프의 공과를 함께 물려받은 공화당이 어떤 길로 나아갈지 어느 때보다 관심이 가는 시기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