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통해 자영업 돕자는 이익공유제
'코로나 수혜기업'이란 전제부터 잘못
고통 공유 차원에서 정부가 나서야
가끔 가던 식당이 얼마 전 문을 닫았다. 몇 년째 내리막이었고 오랜 손님들 덕에 그나마 버텨 왔는데, 결국 코로나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또 다른 단골 음식점 한 곳은 2.5단계 이후 점심 영업만 하고 있다. 그 집 사장님은 5인 이상 모임 금지가 풀린들 저녁 손님들이 다시 올 것 같지는 않다면서 아예 장사를 접을까 고민중이라고 했다. 회사 근처 헬스클럽, 버스정류장 앞 노래방과 당구장도 다 휴업 상태다.
이 업소들엔 주인만 있는 게 아니다. 식당이 문 닫으면 주방과 홀서빙 이모들도 그만둬야 한다. 헬스클럽이 멈추면 트레이너와 접수 직원, 청소 아주머니들도 쉬어야 한다. 연관 효과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에만 있는게 아니라, 동네 자영업에도 작동한다. 코로나 1년에 반폐업이나 다름없는 2.5단계까지 겪으면서 자영업자 거의 모두 금전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한계점에 도달한 듯하다. 더 늦기 전에 이들을 '구조'해야 한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돕느냐다. 이 점에서 코로나로 큰돈을 번 기업들이 코로나로 힘들어 하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을 지원토록 하자는 여당의 '이익공유제' 제안은 언뜻 보면 매우 아름다운 연대와 협력의 모델처럼 보인다.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대상 기업은 누가봐도 삼성 현대 SK같은 대기업과 네이버, 카카오, 배달의민족 등이 될 것이다.
하지만 착해 보이는 정책이 다 좋은 정책일 수는 없다. 우선 '코로나로 큰 이익을 본 기업'이란 전제 자체가 옳은지 따져봐야 한다. 네이버 카카오의 이익이 크게 늘었고 주가가 몇 배나 뛴 건 맞지만, 그건 '코로나가 준 선물'이 아니라 오래기간 연구하고 투자하며 시행착오 끝에 구축한 '플랫폼의 결실'이다. 코로나 이전부터 세상은 언택트 시대로 가고 있었고, 플랫폼은 이미 시장경쟁의 최대 승부처가 된 상태였다. 이 메가트렌드에 먼저 올라탄 혁신적 기업들이 코로나의 특수상황을 맞아 성과를 낸 것인데, 마치 로또 맞은 기업인 양 청구서를 내미는 건 매우 낡고 부적절한 접근이다. 혁신을 독려하기보다 그 결실부터 나누라고 조른다면 어떤 기업이 투자하고 도전하겠는가.
네이버가 입점업체 수수료를 깎아주고, 배달의민족이 식당이나 라이더에게 돌아갈 몫을 좀 늘려줄 수는 있겠지만 생사기로에 선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또 배달하지 않는 식당들, 노래방, 동네 커피점들은 누가 도와야 할지. 그렇다고 삼성전자가 노래방을 도와주고, LG전자가 동네 빵집을 지원하는 것도 이상하다.
과거에도 성과 공유, 협력이익 공유 같은 '공유 모델'이 있었다. 대기업들이 중소협력업체들을 더이상 쥐어짜지 말고, 성과를 충분히 보상하라는 취지였다. 속칭 '코로나 수혜기업'들의 이익에 자영업자들이 기여했다면 공유하는 게 마땅하고, 약탈적 이익이었다면 환원하는 게 옳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아니지 않은가. 엄밀히 말해 그 이익은 공유대상이 아니다.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코로나가 내린 재앙일 뿐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반드시 살려야 한다면, 돈 번 기업들을 끌어들일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전체가 함께 짊어져야 한다. 이익 공유가 아닌, 손실과 고통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결국 국가의 몫이다. 나라 곳간이 화수분이 아니고 국가재정도 악화하고 있지만 그래도 위기의 국민을 구조하는 일이다. 사람이 먼저고, 생명이 먼저 아닌가. 3차 재난지원금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자영업 현실을 얘기할 때는 눈물 훔치던 국무위원 국회의원들이 재정지원 얘기만 나오면 얼굴색을 바꾸는 장면에서 자영업자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착하고 현명한 기업들은 알아서 나설 것이다. 정부는 정부일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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