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일이 불과 30여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새로운 이슈가 등장했다.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이 사망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대법관을 지명한 것이다. 공화당은 연방상원에서의 인준을 선거 전에 서둘러 마치겠다고 밝혔고, 민주당은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이기 때문에, 법사위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투표는 무난할 전망이다. 2017년 제도개혁으로 대통령이 임명한 공직에 대한 인준 과정에서 필리버스터가 불가능해 진 것도 공화당에 큰 도움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지명부터 인사청문회까지 평균 40일 이상이 걸렸던 과거에 비하면, 서둘러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2016년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 8개월 전에 새 연방대법관을 지명한 것에 대해 공화당이 “물러나는 대통령이 지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상원 인준을 무산시킨 것과도 확연히 대비된다.
사실 미국의 연방대법관이 바뀌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대륙법(Civil Law System)을 따르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보통법(Common Law System) 국가이다. 문서화된 법률도 중요하지만 개별 사건들 속에서 보편적인 법 원칙을 발견해 가는 것이 핵심인데, 이 과정에서 판사의 판결과 법 해석이 중요하다. 따라서, 가장 상위 법원이면서 헌법을 해석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진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9명은 실질적으로 법을 만드는 역할도 한다.
2차대전 이후 역사를 보면, 공화당 대통령은 임기당 평균 2번 연방대법관을 임명해서 민주당 대통령의 평균 1.5번보다 많았고, 1969년 이후 지난 50년간은 공화당이 총 14명, 민주당이 총 4명을 임명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임명에 성공한다면 4년간 총 3명, 대법원의 3분의 1을 바꾸는 셈이다. 진보적인 사람들이 "대통령과 의회 권력을 다 바꿔도 대법원 때문에 소용이 없다"고 한탄하는 것도 일견 이해할 수 있다.
대선 전에 배럿 판사가 대법관에 임명된다면, 연방대법원은 보수 6대 진보 3의 구도가 된다. 여성의 임신 선택권에 대한 대법원 판례가 보수적으로 뒤집힐 가능성이 상당하고, 종교계의 권리도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총기를 규제하려는 연방 및 주 정책들에 제동이 걸릴 것이고, 흑인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들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 만약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연방 상하원 모두 민주당으로 넘어가더라도, 연방대법원과의 갈등과 충돌은 불가피하다. 더구나, 보수 성향 대법관들의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어서, 이러한 구도는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이 대법관 임명을 강행하는 이유는 또 있다. 선거에서 이슈를 전환하는 것이다. ‘코로나 대응 실패’의 멍에를 ‘법과 질서’ 이슈로 크게 만회한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대법관 임명 과정에서 ‘선명한 보수’의 미래를 지지자들에게 보여 줄 수 있다. 대개 민주당 지지자들은 자신이 혜택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개별 정책들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지만, 공화당 지지자들은 보다 추상적인 보수 이념에 자극된다. 보수진영이 강하게 뭉치게 하는 효과가 있고, 종교적 색채가 강한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오는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 또한, 대선과 같이 진행되고 있는 다른 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는 듯 보인다.
다만, 이러한 공화당의 전략이 성공할지는 의문이다. 민주당 입장에서 대법관의 상원 인준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더라도, 대선과 상하원 선거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켜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확실히 투표하도록 독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긴즈버그 대법관의 사망 다음 날에 바이든 후보의 후원금이 크게 늘었다고 하며, 민주당에 우호적인 이익단체들이 대규모 TV 광고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CNN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선 이전 인사청문회 개최를 미국인들의 59%가 반대하고 있는데, 바이든 후보의 최근 지지율 51%보다 훨씬 높다. 공화당이 대법관 임명 이슈로 손해를 볼 수도 있어 보인다.
삼국지에서는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물리쳤다고 하는데, 긴즈버그 대법관이 사망해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도움이 될지 방해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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