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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만원 갚으러 호주로 간 남자, 받자마자 “선물일세” 되돌려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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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서 고학하던 권두우씨, 손창건씨 도움으로 학업 마치고 인도네시아 오지 민원해결사로
2019년 4월 어느 날, 호주 시드니에서 10여년 만에 만난 두 사내의 대화는 대략 이렇다.
권두우(43): “2,000만원 빚 갚으러 왔습니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손창건(64): “내가 언제 갚으라고 했나, 안 받으려네.”
권: “제가 꼭 갚는다고 했습니다. 받아주세요.”
손: “그럼 줘 보게.” (돈을 받자마자 돌려주며) “자 받게나, 자네 가족에게 주는 내 선물일세.”
지인과의 돈 거래 시 채무가 면제되는 소멸 시효가 10년이라는 법적 잣대를 따지면 권씨의 상환 의무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굳이 아내의 내키지 않아하는(?) 허락을 얻어 가족까지 대동하고 인도네시아에서 호주로 날아가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손씨는 그저 못 이기는 척 “그간 이자는 없는 걸로 치겠네” 호기로운 추임새 정도 넣으며 받으면 그만이었다. 금전이 얽힌 관계란 무릇 비정한 게 인지상정, 둘은 세상의 상식을 유쾌하게 뒤집었다. 둘의 각자 사연은 저 대화만큼이나 기막히다.
권씨는 요보호아동(고아)이었다. 지금 나이도 치아 발육 상태로 얼추 짐작한 것이다. 자신을 대전의 한 보육원에 맡긴 할머니가 성씨가 ‘권’이라고 알려줘 보육원장 성(오씨)을 따라 쓰던 다른 보육원 아이들과 달리 유일하게 권씨 성을 썼다. 그는 “제가 대전 권씨의 시조”라고 웃었다.
보육원 생활은 팍팍했다. 새벽에 자다가 두들겨 맞고 일어나 발가락 부분이 검게 때가 낀 선배들의 양말을 하얗게 빨 때까지 또 두들겨 맞았다. “하도 맞아서 저는 안 그러려고 노력했는데, 나중에 후배들이 저도 때렸다고 하길래 창피했다”고 회고했다. 폭력의 대물림이 그렇게 무섭다.
선택의 여지없이 공고에 진학한 권씨는 보육원에서 자립한 뒤 공단에서 일했다. 미래가 없다고 여긴 그는 야간대학을 다녔고 대학원까지 나온 뒤 정신병원 사회복지사로 취직했다. “보육원 출신 중에 학력이 가장 높았고, 이후 후배들도 저를 보고 대학에 진학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고아라는 이유로 사귀던 여성의 집안에서 결혼을 반대하자 2004년 호주로 떠났다.
청소 등 온갖 일을 하다 2006년 요리학교에 진학했다. 그때 인연을 맺은 이가 손씨와 지금의 아내인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노비아나 산토소(46)씨다. 권씨는 미용재료상 손씨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었고, 노비아나씨는 권씨의 공부를 도왔다. 새벽에 김밥까지 말며 돈을 벌었지만 늘 학비가 부족해 손씨에게 손을 벌렸다. “꼭 갚겠다”는 약속과 함께. 노비아나씨 덕에 한국인 30명 중 유일하게 2년 만에 졸업했다. 노비아나씨 부모는 권씨의 조건 대신 됨됨이를 보고 결혼을 승낙했다.
학비를 갚기는커녕 호주 생활이 갈수록 어려워지자 권씨는 2012년 처가가 있는 인도네시아로 왔다. 식당을 했지만 실패했다. 한국중부발전(KOMIPO)이 인도네시아 오지에 세운 ㈜왐푸수력발전(PT. WEP)에 2017년 취직하면서 생계가 안정됐다. 그는 입사 면접에서 고아라는 사실을 숨겼다. 그게 마음에 걸려서 입사 한 달 뒤 상사에게 실토했다. 상사는 “고맙다, 나도 비슷한 처지”라며 권씨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권씨는 오지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최경환(59) WEP 대표는 “권씨가 현지인 양부모를 두고 살뜰히 챙길 정도로 주민들의 마음을 얻고 있다”고 했다. 가족과 떨어져 오지에서 번 돈이 모이자마자 권씨는 바로 호주로 갔다. 망설이던 아내도 결국 권씨의 뜻에 따랐다.
권씨의 아름다운 얘기가 액면 그대로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호주에 전화했다. 수화기 너머 손씨는 앞뒤 가리지 않고 단언했다. “두우가 말한 게 다 맞을 겁니다.” 이후 손씨가 설명한 자초지종도 권씨와 일맥상통했다. 손씨는 “착하고 의리 있고 굳은 일 마다하지 않고 성실한 녀석이라 아들처럼 생각해서 조건 없이 준 돈”이라며 “간간이 연락은 주고 받았지만 10년 만에 불쑥 찾아와 돈을 내놓길래 당황했다, 그래도 그 마음을 이해는 한다”고 했다.
손씨는 권씨가 인도네시아로 떠난 이듬해인 2013년 직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간에도 전이된 상황이었는데 수술을 받은 뒤 감쪽같이 나았다고 했다. 구세군교회 정교(장로)인 손씨는 “암 완치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두우와의 끈끈한 유대, 그 만남이 선하게 이어진 게 더 소중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기사를 쓰면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권씨가 그간 형편이 어려운 중에도 10년 넘게 대전 지역 장애인들을 남모르게 돌본 공을 인정받아 21일 국내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게 된 것이다. 인간의 선한 의지와 아름다운 관계 앞에 척박한 환경과 음울한 조건은 이토록 무력하고 볼품없다.
수마트라 왐푸ㆍ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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