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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가자 인수’ 구상 후폭풍… “인종 청소” 비판 봇물, 백악관은 진화 시도

입력
2025.02.06 17: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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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민주, 탄핵 주장까지… 공화도 “점령 부적절”
이스라엘 야권 “하마스 자극... 인질 귀환 방해”
백악관 “참신 발상” 반박… ‘충격 요법’ 분석도
“전쟁 범죄” “제국주의 회귀, 제2 나크바” 비판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5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여성 운동 선수들에게 둘러싸인 채 성전환 여성 운동선수의 여성·소녀 운동 경기 참가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명령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5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여성 운동 선수들에게 둘러싸인 채 성전환 여성 운동선수의 여성·소녀 운동 경기 참가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명령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전쟁으로 초토화한 가자지구를 미국이 점령해 개발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구상이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다.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 내에서마저 “인종 청소”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백악관은 “인도주의적 제안”이라며 진화를 시도했지만, 설득력 없는 궤변이라는 지적이 많다.

“설익은 제안” 사면초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팔레스타인인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 행사 위원회’ 개막 연설을 통해 “가자지구 해결책 모색 과정에서 문제를 악화해선 안 된다. 어떤 형태의 인종 청소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가자 재건 방안으로 제안한 팔레스타인 주민의 주변국 이주를 이방인 강제 배제, 곧 ‘추방’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국제사회의 지배적인 기류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국가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포함한 ‘두 국가 해법’이 요원해질 것을 염려한다. 가령 프랑스 외무부는 성명에서 “가자의 미래는 제3국 통제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국가 틀 안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랍권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AL)도 팔레스타인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두 국가 해법의 실행을 촉구했다.

트럼프표(標) 가자 구상을 “이름만 다른 인종 청소”로 규정한 미국 민주당(야당)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한다. 앨 그린 연방 하원의원은 이날 하원 본회의에서 “인종 청소는 반인륜적”이라며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 공화당조차 찬성 일색은 아니다. 미국우선주의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다수다. 랜드 폴 연방 상원의원은 엑스(X)에 “우리는 미국 재정을 파멸시키고 미 군인들을 피 흘리게 하는 또 다른 점령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썼다. 조시 홀리 연방 상원의원도 “돈을 가자에 쏟아붓기보다 미국에 쓰는 게 낫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소탕을 명분으로 가자를 폐허로 만든 이스라엘에서조차 모두가 트럼프 구상을 반기지는 않는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제1야당 예시 아티드 소속 람 벤 바라크 의원은 “성급한 선언이 인질 귀환을 방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협상 상대인 하마스를 과도하게 자극할지 모른다는 의미다.

학계 역시 부정적이다. ‘미국의 가자 점령·소유’라는 트럼프 대통령 구상은 1949년 제네바 협약, 1998년 로마 협약 등 전쟁범죄를 규정한 두 국제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라고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풀 건드려 뱀들 놀라게 하기?

캐럴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5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캐럴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5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가 그것(가자 재건 구상)을 사랑한다”며 쏟아지는 비판을 모른 체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설익은 구상을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가자에는) 물도, 전기도 없다. 그(트럼프)는 인도주의적 마음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또 “대통령이 임시 이주를 약속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것은 영구 이주론이었다.

참신한 발상이 비난받을 일이냐는 식의 반박도 나왔다. 레빗 대변인은 해묵은 갈등을 해결하려다 보니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방식으로(outside the box) 사고했다”고 설명했다.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미국 CBS방송에 “현실적인 해결책이 없으니 트럼프 대통령이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완벽한 대책이 아니어도 의미는 작지 않다는 게 트럼프 측 얘기다. 레빗 대변인은 “가자에 군대를 투입하겠다는 것도, 세금을 쓰겠다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은 협상 때 지렛대가 될 만한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포스트는 “트럼프가 중동에서 ‘뱀들을 놀라게 하려고 풀을 때리고’ 있다”며 “그의 급진적 정책을 본 역내 일부 국가가 가자 사안에 더 솔직한 접근 방식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협상용 미끼이거나 일종의 충격 요법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파장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가디언은 “트럼프의 가자 소유 계획은 19세기 제국주의로의 회귀”라며 “미국 정부는 (트럼프의 구상이) 두 번째 ‘나크바(대재앙)’를 옹호하는 것처럼 비친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팔레스타인인 70만 명이 강제로 쫓겨난 비극의 역사를 트럼프 행정부가 되풀이하려 한다는 뜻이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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