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세계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경제적 불확실성이 매우 커졌다. 우리의 미래 또한 국제적 흐름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이 흐름의 실상과 방향을 읽어 내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달러는 여전히 강세다. 오늘날 세계 경제에서 달러의 중심적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로달러를 알아야 한다. 유로달러는 미국 밖에서 유통되는 역외달러이다. 비미국 국가의 기업이 수출을 하고 달러로 대금을 수령한 경우, 이를 자국 통화로 교환하거나 미국 내 금융기관에 예치하면 역외달러는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비미국 금융기관에 예치하고, 그 금융기관이 달러로 사업을 하면 역외달러 시장이 형성된다.
유로달러 시장은 1950년대 미국 제재를 피해 공산권 국가들이 유럽의 금융기관에 달러를 예치한 데서 시작됐다. 1950년대 후반, 유로달러 시장의 예금금리는 미국 금리보다 높았다. 미국의 기업들은 고금리를 제공하는 유로달러 시장에 달러를 예치했고, 미국보다 규제가 느슨한 이 시장에 미국 금융기관들이 대거 진출했다. 유럽 중앙은행들과 국제결제은행(BIS)이 유로달러 시장의 초기에 중요한 자금 공급자였다. 유럽 국가들이 국제수지 흑자를 기록하자, 중앙은행들은 잉여달러를 공급했던 것이다.
달러가 파운드를 제치고 최강의 통화로 군림하자 런던 금융계는 유로달러를 이용해 월가와 경쟁했다. 그래서 런던금융시장에서 주요 은행들이 단기자금을 거래할 때 적용하는 금리인 리보금리(LIBOR)는 국제금융시장에서 대표적인 준거금리로 오랫동안 기능했다.
문제는 이 시장이 미국 밖에 있다 보니 미국 금융당국의 규제를 받지 않고, 유로달러를 취급하는 비미국 은행은 필요할 때 연준의 지원을 받을 수도 없다. 이 시장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달러를 최종적으로 공급하는 미국이 나서야만 했다. 미국에도 그럴 만한 필요가 있었다. 2차대전 후 국제금융질서는 브레턴우즈 체제였다. 이 체제에서 달러가치는 금에 고정됐고, 외국 중앙은행이 요구하면 미국은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줘야 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역외달러시장이 형성돼 달러가 그 시장 내에서 유통되면 달러에 대한 교환요구가 감소해 달러가치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미 금융당국은 외국 중앙은행들에 스와프라인을 이용해 1960년대에 처음 달러를 제공했다. 해당 중앙은행들이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안정시키고, 유로달러 시스템을 지원하도록 했다. 이런 배경하에서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연준이 스와프라인을 이용해 글로벌 시장에 달러를 공급했다. 당시 연준은 비미국 은행에 미국 은행보다 더 많은 유동성을 제공했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금융시장 동요 시에도 연준은 유동성을 공급해 시장을 안정시켰다.
유로달러 시장은 미국 밖에 거대한 달러금융시장을 만들었다. 달러가 국제 무역과 금융에서 널리 이용된다. 또 유로달러 시장이 생기면서, 미국과 직접 관련이 없는 제3자들 간이 달러로 거래를 했다. 유로달러 시장을 통해 거미줄처럼 전 세계에 확대된 달러시스템이 바로 달러 패권을 뒷받침한다. 현재 비은행 금융기관, 비금융기업 등 미국 밖의 비은행은 약 13조 달러의 달러부채를 부담하고 있다. 미국 밖에 본점을 둔 은행들은 예금채무, 채권발행액을 합해 약 16조 달러의 달러부채를 부담하고 있다. 이 부채 외에 외환스와프(FX Swap)와 선도거래, 장기 통화스와프 등으로 인한 거대한 부외채무가 있다. 외환스와프 시장은 2022년 4월 기준 일 거래규모가 3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데, 외환스와프에서 한쪽 통화가 달러인 경우가 약 90%에 달한다.
유로달러가 달러처럼 기능하는 건 1:1 교환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동등성을 유지하는 건 바로 수많은 도전을 이겨내고 자리 잡은 제도이다. 이제 유로달러 시스템은 너무 커서 실패할 수 없게 됐다. 미국으로서도 그 실패를 감당하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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