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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곰이 담요 덮고 떡하니… 인구 위기가 초래한 '불편한 만남'

입력
2025.02.03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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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곰 겨울잠 안 자고 사람 습격
지방 인구 줄고 고령화 빨라지며
자연·민가 경계선 '사토야마' 감소
"저출생·동물보호 위해 공생해야"

곰이 지난해 12월 24일 일본 도호쿠 후쿠시마현 기타카타시에서 한 민가의 거실을 차지한 채 일본 난방 기구인 고타쓰를 쬐고 있다. 일본 NHK방송 홈페이지 캡처

곰이 지난해 12월 24일 일본 도호쿠 후쿠시마현 기타카타시에서 한 민가의 거실을 차지한 채 일본 난방 기구인 고타쓰를 쬐고 있다. 일본 NHK방송 홈페이지 캡처

'어느 날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니 곰이 거실에서 유유자적 뒹굴거리고 있다면?'

만화나 동화에서 볼 법한 장면이 최근 일본 동북부 후쿠시마현 기타카타시에서 실제로 목격돼 큰 화제를 모았다. 깊은 산속에서 한창 겨울잠을 자야 할 곰이 어쩌다 마을로 내려와 남의 집 거실을 떡하니 차지하게 된 걸까. 사연은 이렇다.

지난해 12월 23일 오후 6시 30분쯤. 60대 남성 집주인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 안에 들어선 순간 깜짝 놀라 주저앉을 뻔했다. 거실 탁자(고타쓰) 밑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곰의 엉덩이가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곰의 몸길이는 90cm 정도였다.

곰은 인기척을 느끼고도 꼼짝하지 않았다. 고타쓰에서 빠져나올 생각이 도통 없는 듯했다. 고타쓰는 화로를 넣은 탁자에 두툼한 담요를 덮어 만든 난방 기구다. 일본은 집 안을 따뜻하게 할 온돌이 없고 지진에 대비해 단열재를 적게 써 겨울철 실내가 춥기로 유명하다. 대신 온 가족이 고타쓰에 손발을 넣어 몸을 데우는데, 곰도 고타쓰에서 뜨끈한 온기를 즐기고 있었다.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음식도 이미 다 먹어치운 상태였다.

집주인은 당황했지만 집 문을 걸어 잠근 뒤 서둘러 옆집으로 피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기타카타시 직원과 경찰은 이튿날 오전 11시 30분 곰 포획 작전에 돌입했다. 우선 집 주변에서 연신 폭죽을 터뜨렸다. 곰을 놀라게 해 집 밖으로 뛰쳐나오게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곰은 이리저리 방을 옮겨다닐 뿐 좀처럼 나오려 하지 않았다. 결국 오후 3시 30분 마취총을 쏜 뒤에야 곰을 포획할 수 있었고, 곰은 다시 산으로 돌려보내졌다.

기타카타시에서 곰이 민가에 침입한 게 처음은 아니다. 같은 달 2, 4일에도 빈집에 들어가 잠을 자고 있던 곰이 발견됐다.

슈퍼마켓 점령에 러닝 중인 남성 덮치기도

일본 전국 반달가슴곰 출몰 건수. 그래픽=송정근 기자

일본 전국 반달가슴곰 출몰 건수. 그래픽=송정근 기자

문제는 곰이 기타카타시뿐 아니라 도호쿠와 북부 홋카이도를 중심으로 각지에서 빈번하게 출몰하고 있다는 점이다. 곰이 마을을 습격해 주민이 부상을 당하는 사건도 잇따랐다.

지난해 11월 30일에는 도호쿠 아키타현 아키타시의 한 슈퍼마켓에 곰 한 마리가 쳐들어와 당시 영업 준비를 하던 47세 남성 종업원을 공격한 사건도 발생했다. 종업원은 피를 흘리며 가까스로 탈출했는데 다행히 머리만 맞아 목숨을 건졌다. 곰은 이후 육류 매대로 가 진열된 고기를 먹어치우고 꽃 매대를 헤집고 다니는 등 슈퍼마켓을 제 집 안방처럼 누볐다.

곰은 슈퍼마켓을 점령한 지 55시간이 지난 12월 2일 오후 붙잡혔다. 슈퍼마켓에 곰이 나타난 건 전례 없는 일이기에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80대 남성은 NHK방송에 "곰이 오기 사흘 전에도 이곳에서 장을 봤다"며 "이런 곳까지 내려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6일 나가노현 노자와온천마을 한 캠핑장에서는 63세 남성이 러닝을 하다 곰에게 습격당했다. 도로로 뛰쳐나온 곰 두 마리 중 1m짜리 곰이 남성을 덮쳤다. 남성은 머리와 왼쪽 어깨를 다쳐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올해 들어서도 곰 출몰 소식은 꾸준히 들려온다. 1월 12일에는 아키타시 육상자위대 주둔지에 '곰이 나타났다'는 신고가 접수됐고, 같은 날 주둔지에서 2㎞ 떨어진 아키타항 근처에서도 곰이 도로를 건너는 모습이 목격됐다.

잇따른 곰 출몰은 사람 사이 갈등으로 번졌다. 홋카이도수렵협회는 지난해 11월 25일 안전을 우려해 사냥꾼들의 엽총 소지를 불허한 홋카이도 도청의 처분이 적법하다는 삿포로고법 판결에 반발하며 도청 지침을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협회는 "곰이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 엽총 소지를 규제하고 우리한테 책임지라고 하면 어떻게 사냥할 수 있겠나"라고 성토했다. 홋카이도 한 지자체 관계자는 "사냥꾼들의 우려를 이해한다"며 "곰 출몰 시기에는 협회와 대응 방안을 긴밀하게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경계심 심했지만… 이제 활동 영역으로 인식

일본 도호쿠 아키타현 곰 출몰 정보 지도인 구마다스에 지난해 11월 1일부터 지난달 27일까지 목격된 곰 관련 정보가 빨간색 점으로 표시돼 있다. 이 기간 신고된 곰 목격 건수는 303건에 달했다. 구마다스 홈페이지 캡처

일본 도호쿠 아키타현 곰 출몰 정보 지도인 구마다스에 지난해 11월 1일부터 지난달 27일까지 목격된 곰 관련 정보가 빨간색 점으로 표시돼 있다. 이 기간 신고된 곰 목격 건수는 303건에 달했다. 구마다스 홈페이지 캡처

12월 전후 시기는 곰이 이미 겨울잠에 들어가야 했을 때다. 그런데 예년과 달리 동면이 늦어지면서 한겨울에도 먹이를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곰이 늘고 있다. 우치야마 기요시 이와테대 농학부 준교수는 니혼TV에 "원래 이 시기에는 곰이 겨울잠을 자야 하는데 민가에 계속 내려오는 건 매우 특이한 일"이라고 말했다.

곰의 특성을 고려하면 잦은 민가 출몰은 더욱더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곰은 경계심이 매우 강한 동물이라 시끄러운 곳이나 사람이 몰려 사는 촌락은 가급적 피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곰이 민가 근처까지 내려온 적은 있지만 사람을 피해 금방 산으로 되돌아가 주민이 다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전문가들은 곰이 이전과 달리 과감하게 활동 범위를 넓힌 이유로 뜻밖에도 '인구 감소'를 꼽는다. 일본에는 '사토야마'라는 용어가 있다. 사토야마는 자연과 도시 사이에 산과 들, 마을과 농경지로 이뤄진 지역으로, 그동안 곰의 영역과 사람의 영역을 구분 짓는 역할을 했다. 곰이 민가로 내려가지 못하게 막는 완충지대였던 셈이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지역 소멸 속도가 빨라지면서 사토야마가 급속히 사라져 갔고, 곰의 활동 경계선도 촌락과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면서 곰은 민가 근처도 자신들이 활동할 수 있는 구역으로 인식하게 됐다. 인간과 곰이 마주칠 확률도 그만큼 높아졌다. 일본 환경성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일본에서 곰 습격으로 다친 사람이 212명으로 집계됐다. 2023년 75명이었던 데 비해 불과 1년 사이 3배나 늘었다.

고령화 대표 지역 아키타, 잦아진 곰 출몰

일본인 곰 사냥꾼들이 지난해 10월 15일 일본 북부 홋카이도 이와미자와시 숲에서 곰 덫을 확인하고 있다. 이와미자와=로이터 연합뉴스

일본인 곰 사냥꾼들이 지난해 10월 15일 일본 북부 홋카이도 이와미자와시 숲에서 곰 덫을 확인하고 있다. 이와미자와=로이터 연합뉴스

실제로 일본에서는 인구 소멸 지역과 곰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 겹친다. 아키타현이 대표 사례다. 지난해 7월 기준 아키타현 전체 인구는 89만9,314명으로, 도호쿠 지역 내 6개 현 가운데 인구가 90만 명 밑으로 떨어진 첫 번째 광역자치단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지난해 10월 아키타현의 생산 가능 인구(15~64세) 비율은 51.6%로 전국 최하위였고, 0~14세 인구 비율도 8.9%로 역시 꼴찌였다. 반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39.5%로 전국 최고를 찍었다. 저출생·고령화 실태를 생생히 보여주는 수치다.

반면 곰 출몰 빈도는 잦아지고 있다. 아키타현이 운영하는 현내 곰 출몰 정보 지도 '구마다스'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일부터 올해 1월 27일까지 약 석 달간 곰을 봤다는 신고가 303건이나 접수됐다. 한 달에 100건꼴이다.

그러나 불과 2년 전인 2022년 11월 1일~2023년 1월 27일 곰 신고 건수는 5건에 그쳤다. 당시 아키타현 인구는 91만3,514명, 0~14세 인구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각각 9.1%, 39%였다.

곤도 아사미 아키타현반달가슴곰피해대책지원센터 주임은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인구 감소로) 사람과 곰의 생활권이 겹치기 시작했다"며 "사람이 곰에 밀려나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40년 새 곰 서식지 두 배, 국토 60%로

지난해 10월 16일 홋카이도 스나가와시에서 붙잡힌 불곰이 우리 안에 갇혀 있다. 스나가와=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16일 홋카이도 스나가와시에서 붙잡힌 불곰이 우리 안에 갇혀 있다. 스나가와=로이터 연합뉴스

'곰 출몰 주의보'는 앞으로 도호쿠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니시 나오키 산림종합연구소 도호쿠지부 동물생태팀장은 "2023년부터 두드러진 도호쿠 지역 곰 출몰은 앞으로 혼슈(일본을 이루는 네 개 섬 중 가장 큰 섬) 각 지역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닛케이는 환경성 분석을 인용해 "2018년 곰 서식지 규모는 국토의 60% 이상으로, 1978년의 두 배로 늘었다"며 "삿포로와 센다이 등 대도시에서도 곰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고 전했다. 우치야마 기요시 준교수는 "곰은 원래 산속 깊은 곳에서 겨울잠을 자지만 인구 감소로 방치된 산 중간 지대와 경작지가 늘면서 곰의 서식지도 넓어지고 있다"며 "민가 주변 환경에 익숙해진 곰이라면 촌락과 가까운 곳에서 겨울잠을 잘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저출생·고령화를 당장 막을 수는 없는 만큼, 사람과 곰이 공생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치야마 준교수는 아사히신문에 "곰 출몰 대책으로 포획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고령화와 마을 소멸 등으로) 한계가 있다"며 "야생동물 보호 관점에서도 곰의 서식지와 개체수를 정확히 파악해 적절히 관리하고 사람과 곰 사이 완충지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이케 신스케 도쿄농공대 교수도 닛케이에 "곰은 울창한 숲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동물이기에 없애는 것은 답이 아니다"라며 "국가 차원에서 곰 연구 전문가를 늘려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 류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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