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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라가치상 받은 그림책 작가 이지은이 첫 소설 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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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라파냐무냐무', '팥빙수의 전설' 등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그림책 작가 이지은이 이달 펴낸 그의 첫 소설 '울지 않는 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예진 기자
'기도로 무장한 인간들이 오늘도 달에게 달려들고 있다.'
2021년 볼로냐 라가치상을 받은 그림책 작가 이지은(48)이 처음 쓴 긴 글 '울지 않는 달'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가 쓰고 그린 베스트셀러 그림책 '팥빙수의 전설', '이파라파냐무냐무'의 마시멜롱, 털숭숭이, 눈 호랑이 같은 사랑스러운 캐릭터나 폭소 터지는 반전 결말은 거기 없다. 한심한 인간들의 온갖 기도 소리에 "손이라도 있으면 귀를 떼어 버리고 싶"은 달만 있을 뿐이다.
이달 출간된 '울지 않는 달'은 그런 달이 하늘에서 땅으로 뚝 떨어져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 늙고 외로운 늑대 카나를 만나 비롯되는 이야기다. 자신만의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그림책 작가가 돌연 소설을 쓴 이유는 뭘까. 지난 1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그를 만나 물었다.
이지은 작가는 "이야기가 떠오를 때 가장 즐겁다"며 "이번에는 글로밖에는 쓸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강예진 기자
"예전에는 이야기를 수집하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이를테면 달의 이야기를 써야지 마음먹고 나서 관련된 이야기를 그러모아 쓰는 식이죠. 언제부턴가는 반대로 이야기가 조립돼 팡 튀어나오더라고요. 저는 그걸 얼른 잡아내서 쓰고요. 제게는 가장 즐겁고, 너무너무 행복하고 감사한 상태죠."
'울지 않는 달'도 그렇게 나왔다. 2023년 가을, 달의 이야기가 처음 떠올랐다. 붙임쪽지에 '달은 늘 기도를 받는다'고 적어 노트에 붙여 놨다. 또 아기 이야기가 떠올랐고, 그다음은 늑대였다. 3개월여 만에 노트 한 권이 이야기 조각들로 가득 찼다. 하나로 연결되는 이야기였다. "저는 글은 써본 적도 없고 글쓰기를 즐기지도 않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글로밖에는 쓸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썼어요. 어쩔 수 없어서."
울지 않는 달·이지은 지음·창비 발행·164쪽·1만6,000원
처음 나온 글은 "아주 긴 동시" 같았다. 눈에 보이게끔 묘사를 더했다. 과해지면 다시 덜어냈다. 글 쓰는 훈련을 해 본 적이 없어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울지 않는 달'은 꾸밈이나 설명은 최대한 피한 담백한 문장들로 쓰였다. 그가 직접 그린 삽화 역시 기존 화풍과는 180도 바뀌었다. 작업 방식도 달랐다. "글을 써 놓고 일단 떠오르는 대로 막 그렸어요. 불필요한 것까지 충분히 그려서 그렇게 쌓아 놓은 다음에 완전히 효율적인 어떤 것으로 다시 그렸어요. 그림을 두 번 그린 거죠."
그의 첫 출발은 일러스트레이터였다. 10년쯤 동화와 그림책에 그림을 그리다 "그림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야기를 짓기 시작했다. 2014년 선보인 '종이 아빠'는 그가 쓰고, 그린 첫 창작 그림책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게 너무나 흥미로운 거예요. 지치지 않고, 나를 채근하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그럼에도 소설 쓰기는 도전이었다. 그는 "내가 큰일을 저지른 건 아닐까 너무 무서워서 책 나오고 일주일은 책을 아예 펼쳐 보지도 않았다"며 "책 후기를 보면 아주 많이 기쁘고, 처음 그림책 시작할 때 그 기분"이라며 웃었다.
'울지 않는 달'을 쓰면서 그는 여러 번 울컥했다고 한다. "(달과 늑대와 인간이) 그냥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을 우리가 지켜본다, 딱 그렇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자기 영역에서 자기가 걸어갈 수 있는 만큼 걸어가는데 그걸 저지하는 건 인간들뿐이더라고요." 폭력적인 세계에서도 서로 다른 존재들이 연대하는 사랑 이야기 '울지 않는 달'은 세밑 세시 벅찬 감동과 큰 위로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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