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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한 모욕, 마이크로어그레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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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거 인종차별 맞을까요?” 해외여행자들이 온라인에서 종종 묻는 질문이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 음식점에 갔는데 종업원들로부터 상당히 불쾌한 일을 당했다는 내용이다. 본인들만 구석진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거나, 자국어로 그들끼리 말하며 웃었다거나, 거만한 표정으로 팁을 강요했다거나. 의심은 가지만 그렇다고 인종차별이라 단정하기도 쉽지 않다. 이럴 때 쓰는 표현이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이다.
□이 단어는 ‘아주 작다’는 의미의 ‘마이크로(micro)'와 ‘공격’을 뜻하는 '어그레션(aggression)'의 합성어다. 직역하면 아주 작은 미묘한 공격쯤 되겠다. 미국 하버드대 정신과 의사 체스터 피어스가 1970년 흑인에 대한 언어적 차별과 모욕을 묘사하는 용어로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여성, 장애인, 빈곤층, 그리고 동양인까지 사회적 약자 전반으로 그 적용 범위가 넓어졌다. 일상생활에서 의도적으로 한 말이나 행동이 아니어도 소수자인 상대가 모욕감을 느꼈다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다.
□최근 열린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동양인 배우들에 대한 마이크로어그레션 논란이 일었다. 영화 ‘오펜하이머’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전년도 수상자 베트남계 배우 키 호이 콴이 건네는 트로피를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낚아채듯 받았다. 다른 백인 배우들과는 악수하고 주먹을 치며 인사했다. 여우주연상을 받은 ‘가여운 것들’의 에마 스톤 역시 트로피를 들고 있던 전년도 수상자인 말레이시아 출신 홍콩 배우 미셸 여(양자경)를 그냥 지나쳐 옆에 서 있던 제니퍼 로런스의 뺨에 입을 맞추고 포옹했다.
□논란을 의식해서였는지 그래도 무대 아래에서는 달랐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키 호이 콴과 끌어안고 찍은 사진이 공개됐고, 미셸 여는 본인이 직접 인스타그램에 시상식 후 스톤과 포옹하는 사진과 함께 '축하해 에마'라는 글을 남겼다. 하지만 정작 논란의 두 당사자는 지금껏 아무 말이 없다. 경황이 없어서 그랬는지 의도적인 무시를 한 건지 알 길은 없다. 무의식중의 차별은 잠재된 의식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더 무섭다. 정말 나는 누구에겐가 마이크로어그레션을 하고 있지 않은지 모두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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