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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은 성평등한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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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으로 보이는 어두운 공간. 남성이 여성의 어깨에 한 손을 함부로 댄다. 다른 한 손으로는 동전을 꺼내 보여준다. 성매매를 암시한다는 걸 남성의 희롱하는 표정에서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여성의 태도. 남성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바느질에 몰두한다. 여성 화가 유딧 레이스터르의 그림 '제안'(1631년)에 담긴 스토리다. 남성을 성 구매자로, 여성을 성상품으로 그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17세기 그림들과 다른 관점이다. 레이스터르의 그림에서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지 않는다.
서양에서도 19세기까지 남성의 에스코트 없이 술집에 드나들면 '문란한 여자'로 낙인찍혔다. 술집뿐이었을까. 학교 교실을 그린 앙드레 앙리 다르겔라스의 '세계여행'(1860)에 여학생은 없다. 교사도 남성이다. 과거 여성들의 영역은 집이었다. 여성들은 집에서도 주인이 되지 못했다. 집 공간 배치에도 '젠더 위계'가 작동했다. 가령 "여성이 하찮은 일을 하는 공간"으로 치부된 부엌은 집의 바깥에 있었다.
책 '꿈꾸는 방'을 쓴 미술평론가 이윤희는 말한다. "젠더·계급적 특징은 공간을 통해 드러나며 불평등, 억압, 차별, 욕망 같은 삶의 부조리를 명확히 보여준다."
책은 '그림 속 공간이 당대의 젠더 인식을 어떻게 드러내는가'를 풀어 썼다. 화가들이 여성을 바라본 시각을 적나라하게 들춤으로써 젠더 프레임으로 그림 읽는 시야를 열어 준다. 이를테면 여성을 대상화하던 수많은 그림 사이에서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1885)은 뭔가 다르게 느껴진다. 가난한 집의 비좁은 식탁에 먹을 것이라곤 감자와 차뿐이지만, 명령하는 남자와 시중드는 여자는 없다. 음식을 공평하게 나눠 먹고 서로를 토닥이는 가족만 있다. 138년 전 그림에서 발견한 '평등한 공간'에서 어쩐지 위로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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