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전후 일본이 고도성장을 누리면서 세계 2위 경제대국의 발판을 닦은 시기는 1956~72년이다. 이 시기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평균 8.5%였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일본 경제를 이끌 산업과 대기업군이 형성됐고, 가파른 경제성장을 통해 68년엔 이미 미국 달러 기준 국민총생산(GNP)이 미국 소련에 이어 세계 3위로 약진했다. 한발 늦었지만 대한민국도 전후의 폐허를 딛고 기운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 군사 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출범하고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면서 63년 9.0%의 성장률을 시작으로 본격 고도성장이 이어졌다. 실적을 보면 1차 5개년 계획 기간 중 연평균 8.5%, 2차 기간 중 10.5%, 3차 기간(72~76년) 중 11% 성장하는 등 ‘한강의 기적’이 구현됐다. 특히 우리나라 성장세는 일본보다 가팔라 70년대 이래 지난해까지 50여 년 동안 80년(-1.6%)과 98년(-5.1%)을 제외하곤 줄곧 일본보다 높은 성장률을 유지해왔다.
▦ 상대적 고성장이 장기화하면서 우리 경제는 점차 일본과 격차를 줄여갔다. 특히 90년대 초 이래 일본이 장기 저성장이 이어진 ‘잃어버린 30년’을 겪으면서 우리의 조선 반도체 철강 등 일부 중후장대 산업들이 일본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고, 1인당 GDP와 구매력 평가 환율(PPP) 기준 1인당 국민소득도 일본과 엇비슷하거나 추월한 것으로 평가됐다. 지난해 한 미국 민간조사기구의 세계 국력 평가순위에선 6위로 매겨져 8위인 일본을 앞지르기도 했다.
▦ 하지만 일본은 30년 불황에도 GDP 규모로 여전히 세계 3위이자, 총액(4조9,374억 달러ㆍ2021년 기준)도 우리(1조8,102억 달러)의 2.7배가 넘는 나라다. 그런데도 우리 근로자들은 어느새 일본보다 많은 임금을 받으며,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49.4달러로 일본(53.2 달러)에 뒤처지는 상황이 됐다. 급기야 올해는 98년 이래 성장률 우위도 1.5% 대 1.8%로 역전될 게 확실하다니, 이러다 일본과 격차가 다시 벌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없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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