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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 논 그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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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명장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화로도 유명한 소설 '슬럼독 밀리어네어'(2005). 인도 빈민가 출신에 일자무식인 주인공 소년은 거액 상금이 걸린 퀴즈쇼에서 열두 문제를 연달아 맞혀 인생 역전 발판을 마련한다. 공교롭게도 모든 질문이 그의 파란만장한 삶에서 답을 구할 수 있는 문제였던 것. 하인으로 섬겼던 호주 외교관의 간첩질을 밀고한 적이 있는 소년에게 다섯 번째로 주어진 질문은 라틴어 '페르소나 논 그라타'의 뜻이었다. 답은 '④용납할 수 없는 외교관'.
□ 국내에서 '외교적 기피 인물'로 통용되는 이 용어는 1961년 제정된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에 명문화됐다. 협약은 모든 나라가 평등한 기반에서 외교관계를 수립하자는 취지로 외교관이 주재국(접수국)에서 형사재판, 조세 등을 면제받을 특권을 부여한다. 대신 제9조에 접수국이 특정 외교관을 기피 인물로 지정, 파견국에 통고할 수 있는 견제 장치를 뒀다. 이 경우 파견국은 문제의 외교관을 소환하거나 직무를 종료시켜야 한다.
□ 현실은 좀 다르다. 2년 전 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의 점원 폭행, 지난해 말 주영 중국 외교관들의 홍콩인 시위자 집단폭행처럼 외교관 비위가 명백하다면 귀국 조치가 따른다. 하지만 외교관 거취 문제는 보통 국가 간 갈등에서 비롯하며 외교관 맞추방으로 치닫는 일도 적잖다. 미국·유럽과 중국·러시아의 대립 속에 지난달 캐나다와 중국이, 전달엔 노르웨이와 러시아가 외교관 추방전을 벌인 게 비근한 사례다. 싱하이밍 중국 대사의 '베팅' 발언을 둘러싼 한중 설전도 그 연속선상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국무회의에서 싱 대사를 구한말 조선 내정에 간섭한 청나라 위안스카이에 빗댔다. 중국에 통고하지 않았을 뿐 페르소나 논 그라타 지정과 다름없다. 중국은 싱 대사 발언이 직무 범위에 있다며 맞서고 있다. 여당에선 대사 추방 주장이 나오지만, 이는 중국의 맞추방과 한중관계 파탄을 부를 악수다. 결국 중국이 대사급 정기 인사 등 적절한 방식으로 결자해지해야 한다. 주재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외교관은 바꾸는 게 협약 취지에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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