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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안중근 열풍’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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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경기 부천의 전 시의원이 지난 주말 정부의 강제동원해법 무효 1인 시위를 한 장소는 관내 ‘안중근 공원’이다. 뮤지컬에 이어 영화로 만들어진 ‘영웅’을 무료 상영하는 지자체들도 최근 부쩍 눈에 띈다.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사형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 의사가 거사를 준비한 1년을 그린 작품이다. 애국혼이 서린 옥중 친필이 각고의 노력 끝에 보존처리를 거쳐 얼마 전 공개되기도 했다.
□ 안중근 열풍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중국 뤼순의 당시 일본법정을 ‘세기의 재판’으로 부르고 싶다. 일제는 ‘테러리스트’로 규정했지만 안 의사는 자신을 국제법상 ‘전쟁포로’라고 했다. “나는 개인자격으로 남을 죽인 범죄인이 아니다.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중략) 만국공법으로 재판하라.” 국제법상 전쟁 중 교전을 벌이는 ‘교전자격자’의 공격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 당시 한반도에선 항일 의병전쟁이 벌어졌고 안 의사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이었다. 비정규군도 교전자격이 인정된다.
□ 안 의사의 진가는 순국 직전까지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써 내려간 대목이다. 한국·중국·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전체가 공존하며 경제발전을 이룰 비책을 담았다. 3국이 ‘상설 평화회의체’를 만들어 공동은행 설립, 공용화폐 발행, 합동군 양성 등을 역설한 부분은 유럽연합(EU)을 떠올릴 만큼 놀랍다. 독일 철학자 칸트의 ‘영구평화론’에도 비견될 만하다.
□ 오는 26일은 안 의사의 순국 113주년이다. 안 의사는 이토를 죽인 건 일본 국민들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침략세력이 장악하면 일본 국민들이 전쟁에 동원돼 죽을 것이란 예견은 틀리지 않았다. 1918년 일본 해군 지도엔 안 의사가 뤼순감옥 옆에 묻힌 것으로 돼 있지만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한일이 미래로 나아가려면 일본이 성의 있게 내놓을 조치가 널려 있다. 안 의사 유해야말로 일본이 실토할 문제다. 16일 한일 정상회담을 안 의사가 하늘에서 지켜본다는 각오로 정부가 임한다면 국민들 마음의 짐이 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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