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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음악 저널리스트는 왜 ‘K클래식’의 비결을 연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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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지난 주말 소프라노 황수미와 헬무트 도이치 리사이틀이 있었다. 도이치는 바리톤 헤르만 프라이, 소프라노 바바라 보니, 아네테 다쉬, 디아나 담라우,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등 세기를 대표하는 성악가들의 전속 피아니스트이자 최고의 음악 코치다.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황수미와는 콩쿠르 직후부터 함께 연주해 왔다. 도이치가 황수미를 찾아가 자신이 파트너가 되면 어떠냐고 먼저 제안했는데 이유는 단순하다. 황수미가 탁월한 성악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시아인이 표현에 서툴다는 것은 옛말이다. 한국인의 언어 구사력과 감정 표현은 놀랄 만큼 세련되고 자연스럽고, 유럽인과 달리 맑은 음색을 지닌 것도 장점이다.
19세기까지 서양음악사는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영국, 체코, 러시아에 의해 쓰였다. 이 견고한 음악 형식은 동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아시아 음악가의 활약이 중요해지고 있다. 황수미 리사이틀과 같은 날, 다른 극장에서는 베트남 출신의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의 무대가 있었다. 1980년 동양인 최초로 쇼팽 바르샤바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그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음악가로 지금도 수많은 사람의 귀와 가슴을 사로잡고 있다.
여기에 한국 출신 음악가들의 활약이 빠질 수 없다. 매년 더 많은 콩쿠르에서 수상 소식이 들려오고, 권위 있는 실내악단, 오케스트라의 단원 명단에도 한국 연주자의 이름이 늘고 있다. 인구도 적은 나라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음악가가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는 것일까.
해외 클래식 음악 전문 프로듀서들이 이 흐름을 취재해 저마다의 기록을 남겼다. 벨기에 공영방송 RTBF의 티에리 로로 감독은 2012년 ‘한국 음악의 비밀(Le Mystere Musical Coreen)’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1996년부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중계해 왔던 그는 미국이나 러시아 출신 유망주보다 더 많은 한국인이 상위 입상하는 것을 보고 한국 음악가들에게 궁금한 것을 취재해 영상에 담아냈던 것이다.
브레히트 반후니커 감독의 2017년 개봉 영화 ‘파이널리스트’는 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계적 콩쿠르에서 결선에 임지영, 이지윤, 김봄소리까지 한국 출신 바이올리니스트가 무려 3명이나 있었던 것이다. 우승자는 임지영이었지만 한국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 진행자 탓에 이지윤이 우승자인 줄 알고 감격해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긴장과 격려가 오가는 신인 한국 음악가들의 데뷔일지가 고스란히 담긴 살아있는 드라마였다.
티에리 로로 감독은 또 다른 다큐멘터리 ‘K클래식 제너레이션’을 내놓았다. ‘한국인들은 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담은 이 영상은 31일 한국에서 개봉한다. 2019년부터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촬영했고,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소프라노 황수미와 에스메 콰르텟, 피아니스트 문지영, 조성진 등 8명의 음악가들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캐나다 몬트리올, 프랑스 비아리츠 등 국제 영화제에서 이미 선보인 바 있다. 국적이나 피부색이 음악가로서의 능력을 결정짓는 요소는 아닐 텐데 해외 관계자들은 이 현상을 어떻게 판단했을까. 특히 황수미 등이 활약 중인 성악 분야는 언어와 외모의 장벽까지 넘어야 하는데 출발선부터 약점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닐까.
영상에서도 언급되지만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는 한국인을 이탈리아 시칠리아 사람들과 기질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감정이 풍부하고 솔직하게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아시아 출신 연주자들과 비교해도 한국인의 감정에 대한 판단과 표현 방식은 다르다는 데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붙잡은 일은 끝까지 이루고자 하는 한국인만의 열망과 성실함, 여기에 가족들이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서양인의 입장에서 확실히 구분되는 특징으로 꼽았다.
가을에 대거 내한하는 유럽 명문 오케스트라 중에는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가 있다. 이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종신 악장은 앞서 언급한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이다. 연주뿐만 아니라 리더십까지 요하는 이 중요한 자리에는 이지윤 말고도 김수연, 박지윤 등 더 많은 한국인 음악가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맨 앞자리에 위치해 있다.
이제는 무대에서 활약하는 연주자는 물론 작곡가의 국적도 다양해졌다. 이로 인해 우리가 듣게 되는 음악은 더 풍성해지고 다채로워지고 있다. 후대 서양음악 학자들은 21세기를 어떻게 정의하게 될까. 동양의 음악가, 특히 한국 음악가들을 어떤 의미로 기록하게 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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