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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말려 비린내 잡고, 양식 기술로 풍성하게... '영광 굴비'의 무한 변신

입력
2022.04.25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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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우리 고장 특산물 : 영광 굴비
특산물 대명사 '영광 굴비' 어획량 줄지만
특유의 염장과 천혜의 기후로 '최고의 맛'
거꾸로 말리고 양식 접목해 변화의 몸짓
'수산물 지리적 표시제' 등록 땐 날개 달아
전국 생산량 80% "고품질 명성 잇는다"

'특산물'이란 단어를 거론할 때면 누구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지역이 있다. 굴비로 유명한 전남 영광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 생산한 '영광 굴비'는 오랜 명성을 쌓으며 한국인의 밥상에 감칠맛을 더해 온 특산물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원래 영광 굴비는 법성포 칠산 앞바다에서 잡은 참조기를 소금에 절여 말린 것이다. 하지만 법성포의 참조기 어획량이 크게 감소하면서 어장도 추자도 인근 해상으로 이동했다. 법성포에서 잡히는 것만으로는 수요를 따라잡기 어려워 제주와 전남 여수, 목포 등에서도 참조기를 들여온다.

그럼에도 여전히 영광 굴비를 최상으로 친다. 특유의 염장 기술과 기후 조건으로, 인간과 자연이 합작해 최고의 맛을 구현해왔기 때문이다. 다만 영광 앞바다의 참조기를 접할 기회가 줄어들면서, 우리가 평소 맛보는 보리굴비의 대부분은 민어과인 부세가 차지하고 있다. 부세는 참조기와 같은 과에 속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서로 다른 생선이다.

영광 굴비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건조 방식을 바꿔 감칠맛을 올리고 참조기 양식 기술을 접목해 안정적 공급에 공을 들이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고품질로 명성을 이어온 영광 굴비가 끝없는 도전을 통해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고 있다.

거꾸로 말려 비린내 잡았다


7일 전남 영광군 법성면의 한 굴비업체에서 김범철 대표가 거꾸로 매달아 건조 중인 굴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7일 전남 영광군 법성면의 한 굴비업체에서 김범철 대표가 거꾸로 매달아 건조 중인 굴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7일 영광군 법성면의 한 굴비 가공공장을 찾았다. 입구에서부터 거꾸로 달려 있는 참조기와 부세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로로 엮인 굴비의 모습만 생각하다 거꾸로 매달린 굴비를 보니 상당히 낯설었다. 굴비를 거꾸로 건조하는 방식은 '비린내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하는 굴비업체 대표의 고민에서 비롯됐다.

보통 굴비는 1년 이상 간수가 빠진 영광산 천일염으로 간을 해서 크기에 따라 10마리, 20마리씩 비닐끈으로 엮은 다음 깨끗한 물로 세척한다. 이후 40~90일 정도 건조를 거쳐 소비자에게 판매된다. 법성포 주변은 낮에는 45% 밤에는 95% 이상의 습도가 5,6시간 지속된다. 낮에는 해풍에 건조가 이뤄지고, 밤에는 내부의 수분이 외부로 확산돼 숙성 효과를 내기 때문에 부패하지 않은 최상의 굴비가 탄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굴비 내부의 수분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으면 특유의 비린내를 막기 어렵다.

7일 전남 영광군 법성면의 한 굴비 업체에 굴비들이 거꾸로 매달린 채 건조 중이다.

7일 전남 영광군 법성면의 한 굴비 업체에 굴비들이 거꾸로 매달린 채 건조 중이다.

김범철 범일수산 대표는 “가로로 엮인 굴비는 세척과정에서 물이 빠지지 않아 비린내가 난다는 생각에 거꾸로 굴비를 매달아 봤다”면서 “그랬더니 건조시간이 단축되는 것은 물론 비린내도 덜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거꾸리'로 이름 붙인 건조용 걸개를 직접 제작해 특허까지 받았다. 걸개는 재활용이 가능해, 비닐끈을 사용할 경우 초래되는 환경오염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대표 의뢰로 지난해 신한대 홍승희 교수팀이 연구한 결과, 거꾸로 매달아 건조한 굴비가 가로로 엮어 말린 굴비보다 비린내가 절반 정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발상의 전환이 만들어낸 획기적인 맛의 변화였다.

경제성 좋은 참조기 양식 기술도 발전

7일 전남 영광군 백수읍 전남해양수산과학원 서해특산시험장에서 황남용(왼쪽) 연구사와 김익희 기술보급팀장이 양식 중인 물고기를 살펴보고 있다.

7일 전남 영광군 백수읍 전남해양수산과학원 서해특산시험장에서 황남용(왼쪽) 연구사와 김익희 기술보급팀장이 양식 중인 물고기를 살펴보고 있다.

참조기 어획량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영광군은 전남 해양수산과학원과 손잡고 양식 사업에 공들 들이고 있다. 이날 영광군 백수읍에 위치한 전남해양수산과학원 서해특산시험장에서 만난 황남용 연구사는 “참조기는 수온 변화에 잘 적응하고 질병에도 강해 7~8개월이면 120g 크기로 자란다”면서 “광어나 조피볼락 등 2년 이상 걸리는 생선보다 경제성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시험장의 여러 수조 안에서는 참조기와 부세 양식기술 개발이 한창이었다. 시험장은 칠산 앞바다가 바로 내다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황 연구사는 "1년마다 정기적으로 자연산 참조기를 잡아 양식 참조기와 교배해, 자연산에 최대한 가까운 품질을 유지한다"고 귀띔했다. 영광군도 2017년부터 참조기 수정란 구입비 등을 지원해 안정적 굴비 생산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달에도 양식 참조기 6만 마리가 영광 수협을 통해 출하됐다.

7일 전남 영광군 백수읍 전남해양수산과학원 서해특산시험장에서 황남용 연구사가 참조기 치어를 살펴보고 있다.

7일 전남 영광군 백수읍 전남해양수산과학원 서해특산시험장에서 황남용 연구사가 참조기 치어를 살펴보고 있다.

영광군은 2010년부터 '수산물 지리적 표시제' 등록을 추진하며 굴비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이를 위해선 농수산물품질관리법상 지리적 특성과 서식지, 어획, 채취 환경이 동일한 연안해역이라는 단서조항에 부합해야 한다. 그 지역에서 잡아 같은 지역에서 생산해야 인정 받는다는 의미다.

영광군은 전국 굴비 생산량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영광의 참조기 어획량이 감소하는 바람에 인근 지역에서 잡은 생선을 가져와 염장하고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말리는 과정을 통해 최상의 맛을 구현해왔다. 따라서 단서조항에 걸린다면 영광군 입장에선 제도의 이점을 살릴 수 없게 된다.

다행히 지난해 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되면서 영광 굴비를 등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영광 굴비 매출은 △2018년 3,240억 원 △2019년 3,140억 원 △2020년 3,206억 원으로 최근 수년간 정체된 상태다. 영광군 관계자는 "새로운 제도가 시장의 활로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광=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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