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승리보다 값진 패배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선거 전부터 투표 부정 가능성을 거론하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던 도널드 트럼프 같은 특이한 사례를 제외하면 미국 대선은 승패가 판가름 나는 순간 패자가 이에 승복해 승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1896년 패한 민주당 후보가 공화당 당선자에 축전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라디오 메시지, 대중 연설 등으로 형식은 달라졌어도 130년 가까운 전통이다. 그래서 승자보다 더 멋진 패자의 연설이 회자된다.
□ 지리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힐러리 클린턴은 2016년 대선을 통해 "이 나라가 생각한 이상으로 깊이 분열돼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트럼프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라를 이끌 기회를 주자"고 했다. 버락 오바마에게 진 존 매케인은 자신을 지지한 모든 사람을 향해 "오바마를 축하하는 데 그치지 말고 선의와 진정성을 갖고 단결할 방법을, 서로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타협을 찾아내 우리가 물려받은 것보다 더 나은 나라를 후손에 물려주자"고 호소했다.
□ 재검표로 대혼란이었던 2000년 대선에서는 패자인 앨 고어가 승리 축하 전화를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내려지자 고어는 "법원 결정에 반대하지만 받아들이겠다"며 "방금 부시에게 전화해 축하하면서 이번에는 다시 전화 걸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유머까지 선사했다. 미국 대선에서 패자의 메시지는 한결같이 선거 결과를 인정하면서 국민에게 단결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 드물긴 하지만 우리 정치사에도 이런 장면이 없는 건 아니다. 2012년 대선에서 패한 문재인 후보는 "저의 실패이지 새 정치를 바라는 모든 분의 실패가 아니다"라며 "박근혜 당선인을 많이 성원해 주시길 바란다"고 해 좋은 인상을 남겼다. 미국 작가 스콧 패리스는 대선에서 패했지만 미국을 바꾼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대통령이 될 뻔한 사람들'에서 "미국은 우아하게 패배를 받아들여 선거제도와 정부의 정통성을 다져왔다"며 "패배한 후보의 승복 없이 안정되고 강건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대선 후유증을 걱정하며 이 말을 곱씹어 본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