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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이념·혐오·밈이 장악… 윤석열·이재명의 '이상한 말초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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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없고 '말초'만 있다. '토론'은 없고 '자극'만 있다. '비전'은 없고 '증오'만 있다.
이번 대선의 수준이 딱 이렇다. 비호감 지수가 높은 대선후보들이 '물'을 흐리는 바람에 대선이 '차기 대통령의 국정운영 능력·국가 지도자 자질을 검증하는 선거'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자꾸 옆길로 샌다. 대권 경쟁이 인터넷 '짤'(웃기는 사진을 뜻하는 은어)을 통해 이뤄지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지지율이 밀리기 시작한 이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말초 선거'에 더 적극적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요즘 다소 자제 중이지만, 언제든 포퓰리스트 기질이 폭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그를 따라다닌다.
윤 후보는 8일 서울 동작구 이마트에서 장을 봤다. 인스타그램에 멸치와 콩을 카트에 담는 사진을 올리면서 '#이마트 #달걀#파#멸치#콩#윤석열'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문재인 정부의 친중국 외교 정책을 비판하며 시작한 '멸공 공세'에 찬동한 것이다.
공산주의를 멸한다는 사전적 의미의 '멸공'은 냉전시대 군부·독재 정권이 이념 편가르기 통치를 위해 애용한 구호로, 정치권에서 사라진 지 수십 년 됐다.
윤 후보가 '멸공 챌린지'에 나선 건 요즘 2030세대의 반중국 정서를 자극해 지지율을 반등시키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많다. 2030세대 사이에서 그의 지지율은 지난 한두 달 사이 급격히 빠졌다.
국민의힘은 조직적으로 멸공 캠페인을 하려는 듯, 나경원 전 의원,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멸치, 콩 사진과 함께 "멸공!" "자유!" 등의 메시지를 연달아 올렸다.
이 후보는 최근 '실용주의' 노선을 강조하며 이념 논쟁에서 한발 물러난 모습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 이 후보 역시 일본과 미국을 싫어하는 정서를 자극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위력을 떨친 '혐오 정치'가 한국 대선에 본격 상륙할 조짐이다. 소수자 혐오를 자극해 주류 기득권 세력의 표를 끌어모으는 방식이다.
윤 후보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을 봉합하자마자 내놓은 1호 메시지는 '여성가족부 폐지'였다. 타깃은 성평등 정책을 역차별로 받아들이는 2030세대 남성. 윤 후보는 지난해 10월 여가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한다더니, 2030세대 사이에서 지지율이 떨어지자 얼굴을 바꿨다.
경제, 복지, 외교안보 등 핵심 국정 분야에 대한 정책 공약을 아직 선보이지 않은 윤 후보가 여가부 폐지부터 들고 나온 것은 모순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남성이 차별이라고 느끼는 부분들은 그 자체로 해결할 일이지, 여성의 권익을 깎아내서 보충할 일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 후보도 얼마 전까지 혐오 정치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젠더 갈라치기 시도를 하거나, 소수자 혐오 정서에 편승하는 발언을 종종 했다. 다만 최근 들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9일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면서 "페미니즘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다. 기성 세대가 정치적 목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며 윤 후보를 비판했다.
대선후보들의 정책 토론은 아직이다. 그 빈 자리를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영상) 경쟁'이 채우고 있다. 탈모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한다는 내용의 공약을 담은 이 후보의 유튜브 영상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이 후보가 머리를 넘기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영상을 활용한 패러디 콘텐츠가 무수히 만들어졌다.
윤 후보도 페이스북에서 광고 카피 같은 '한 줄 공약'을 새롭게 선보였다. 별다른 설명 없이 '병사 봉급 월 200만 원' 짧은 글만 남긴다. 59초 분량의 짧은 동영상으로 '지하철 정기권 버스 환승 적용' 등 공약도 발표했다. 윤 후보은 공약을 설명하는 대신 더부룩한 표정으로 배를 문지르다가 개운한 표정만 짓는다. 공약 발표를 일종의 놀이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담겼다.
문제는 두 후보 모두 '짤' 경쟁에만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정책은 회자되지 않고, 정책을 알리기 위한 수단인 '짤'과 '밈'만 주목받는 것은 결과적으로 유권자의 눈을 가린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온라인 이슈를 선점하거나 생활밀착형 공약을 내는 건 대권 경쟁의 '양념'에 그칠 뿐 메인 요리가 될 순 없다"며 "국민들을 더 나은 미래로 끌고 갈 수 있다는 믿음을 대선 후보들이 '미래 어젠다 경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도 "보수나 진보나 공약에 대한 차별점이 적어진 상황에서 표 경쟁을 해야 하다 보니, 큰 담론을 꺼내기보다 잽만 이리저리 날리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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