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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도 손잡을 수 있는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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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2018년 평창, 2021년 도쿄에 이어 아시아에서 3회 연속 열리는 올림픽이다. 축하와 격려, 평화의 메시지가 쏟아져야 할 시기에 저주의 굿판이 펼쳐지는 분위기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외교적 보이콧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외교적 보이콧이란 국가 차원의 공식 외교사절단은 파견하지 않고, 선수단만 올림픽에 출전시키겠다는 의미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신장위구르 지역 인권탄압에 항의하는 차원이라고 보이콧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자국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중국의 올림픽을 통한 굴기(崛起) 선전에 들러리 서지 않겠다는 속내가 훤하다. 평화의 제전이어야 할 올림픽이 글로벌 패권다툼의 도구로 변질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선각자들은 올림픽 헌장(50조)에 올림픽과 정치를 철저히 분리시켜놓았지만 강대국들은 올림픽을 정치화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미국의 보이콧에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어권 4개국과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유일하게 호응했다. 하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 노르웨이는 결을 달리했다. 프랑스가 2024년 하계, 이탈리아는 2026년 동계올림픽 개최국이란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보이콧은 동맹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방증이다. 앞서 프랑스는 미국에 한 차례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프랑스는 호주와 400억 달러 규모 디젤 잠수함 수출계약까지 맺었지만 미국이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이전을 제시하자 계약파기 수모를 당한 터다. 미국을 민주주의 맏형으로 믿었던 프랑스의 배신감은 부메랑이 되어 미국의 허를 찔렀다. 프랑스는 열흘 전 미국을 따돌리고 아랍에미리트와 190억 달러 규모 무기판매 계약을 성사시켰다. ‘프랑스의 달콤한 복수’라는 평가가 나왔다.
동맹을 배신한 나비효과는 중동 국가들이 미국에 등을 돌리는 후폭풍으로 이어졌다. 미국이 이란과 핵합의 복원협상 늪에 빠져있는 가운데 사우디가 중국의 지원을 받아 탄도미사일을 개발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그사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사우디를 방문해 실질 통치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하며 바이든의 부아를 돋웠다. 빈 살만은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배후로 지목돼, 미국은 빈 살만을 살인자 취급하며 상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빈 살만을 마크롱이 서방 지도자로선 처음으로 무죄 방면하듯 대우한 셈이 되니 미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를 두고 CNN은 “미국이 든든하고 믿을 만한 동맹국이 아닐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바이든 외교를 혹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동맹복원을 전면에 내세웠다. 화려한 외교적 수사로 포장했지만 미국 혼자선 감당키 어려우니 동맹국들의 힘을 빌려, 적과 맞서겠다는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난 1년간 거미줄처럼 촘촘히 짠 중국 봉쇄전략도 그런 맥락이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가 시험대에 올랐다. 친서방 노선으로 기운 우크라이나에 러시아가 군사대응을 불사하겠다고 하자, 미국은 전례 없는 경제보복을 예고하며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새해벽두부터 미·러, 미·중이 서로를 악마화하며 난타전을 펼칠 기세다.
베이징올림픽 참가 규모를 놓고 우리 정부도 고민이 많은 듯하다. ‘영혼 없이’ 한미일 공조만을 내세우며 은근히 보이콧 대열에 합류하라는 압력도 있다. 하지만 미국 내부에서조차 올림픽 보이콧은 보편적이지 않다고 꼬집고 있다. 일각에서 반중(反中)정서를 부추기며 미국 편으로 올인하라는 아우성이 귀청을 때린다. 국익을 위해선 상대를 악마화하는 하수(下手) 외교가 아니라,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는 고차방정식 사고가 필요하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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