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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힘은 냉정한 유권자

입력
2021.12.29 18:00
26면

'막장' 가족사에도 바이든 선택했던 미국
아들ㆍ아내 사생활이 대선 흔드는 한국
대선, 냉정함 속에 정책으로 돌아가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2011년 미국 민주당 대선 캠프가 배포한 당시 조 바이든 부통령의 가족 사진.

2011년 미국 민주당 대선 캠프가 배포한 당시 조 바이든 부통령의 가족 사진.

명문 정치 가문에 시집간 한 여인이 있었다. 그에게 남편은 영광의 상징이었다. 장관까지 지낼 정도로 유망했다. 그러나 남편은 40대 중반 뇌암으로 급사했다. 슬픔에 빠진 그를 시동생이 진심으로 위로했다. 그러다 시동생과 사랑에 빠졌다. 별거 중이었으나 시동생과의 재결합을 원하던 손아래 동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폭로되자 끝내 이혼했다. 하지만 그와 시동생의 사랑도 2년을 넘기지 못했다.

TV 막장 드라마가 아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장남(보 바이든)과 큰며느리(핼리 바이든), 차남(헌터 바이든), 둘째 며느리(캐스린 바이든) 사이에서 실제 벌어진 일이다. 기자가 워싱턴 특파원이던 2017년 3월에 터진 일이다. 한국이라면 온통 난리가 났을 법한 일에 미국 사회는 사뭇 다르게 반응했다. 둘째 부부는 별거 상태였고, 큰며느리는 사별한 뒤였기 때문이었을까. 비난 여론이 나오지 않았다. 당시 전직 부통령 신분이던 조 바이든은 공개적으로 이들의 만남을 지지했다. 조 바이든이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와 맞붙었을 때도 이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대통령 직무수행과 주변 가족의 사생활은 관계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떤가. 여당 대통령 후보가 성인 자녀의 도박과 성매매 의혹 때문에 욕먹고 있다. ‘부모라도 내 새끼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많은 유권자들은 성인 자녀가 전적으로 져야 할 허물을 후보 탓으로 돌린다. 평범한 가정이었다면, ‘자제분 때문에 심려가 크시겠다’고 오히려 위로해줬을 텐데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야당 대통령 후보는 결혼 전 부인의 이력서 허위ㆍ과장 의혹 때문에 혼나고 있다. 야당 후보에게는 여전히 낯설 개명 전 이름으로 활동하던 때의 일인데도, 아내의 과거 허물은 대선 후보의 미래 약속을 부인하는 구실로 악용되고 있다.

유명 블로거 조은산은 '사과는 끝났다'는 글에서 이런 취지의 지적을 내놓았다. "이대로라면 20대 대선은 최악의 대선으로 기억될 것이다. 마타도어와 네거티브만이 존재했던 계절로 기억될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명분 아래 합법적으로 설치된 정치 몰카에 심취했던 선거가 될 것이다. 이제는 정책으로 돌아가자."

‘정책으로 돌아가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렇다면 어떤 정책과 후보를 선택해야 할까. 중국 한나라를 세운 고조(高祖) 유방(劉邦)에 답이 있다. ‘법 삼장’(法三章)과 명장 한신과의 대화가 그것이다. 우선 ‘법 3장’. 유방은 관중을 평정하고 주민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오랫동안 진나라의 가혹한 법률 때문에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저는 세 가지 법률만을 약속하겠습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사람을 상하게 한 자와 도둑질한 자는 그에 상당한 처벌을 할 것이며, 그 밖의 가혹한 법률은 폐지할 것입니다.”

다음은 한신과의 대화. 고조가 한신에게 물었다. “나는 얼마만한 군사의 장수가 될 수 있겠소?” “고작 10만 명쯤 거느릴 장수밖에 안 됩니다.” “그러면 그대는 어느 정도요?” “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고조가 되물었다. “그렇다면 왜 내 부하가 됐소?” “폐하는 병사의 대장은 될 수 없지만, 장수의 장수가 되실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유방의 고사는 조변석개 없이 누구나 알기 쉽고 예측 가능한 정책, 특정 분야의 깨알지식보다는 최고 인재를 기용해 국정 전반을 조율할 인물을 가리킨다. 예측 가능한 정책과 통합의 지도자. 2,200여 년 전 중국 장쑤성(江蘇省) 시골뜨기 유방도 했었다면, 21세기 대한민국 유권자가 못할 까닭이 없다. 미국이 여전히 세계 최강인 건 결국 유권자 탓이다.

조철환 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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