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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앞으로 싸워야 할 상대는 탈레반 아닌 전쟁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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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현안과 외교·안보 이슈를 조명합니다. 옮겨 적기보다는 관점을 가지고 바라본 세계를 전합니다.
전쟁에는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된다. 승전하고도 국고가 텅 비면 파탄을 피할 수 없다. 테러와의 전쟁 역시 ‘쩐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을 막 끝낸 미국에 전비(戰費) 청구서가 날아들고 있다. 파산까지는 아니지만 한 세대 동안 갚아야 할 규모다. 앞으로는 탈레반이 아니라 전쟁부채와 싸워야 한다.
테러와의 전쟁은 20년 기간만큼이나 비싼 전쟁이었다.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한 장면이 얼마 전 공개됐다.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단행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6일 대국민 연설에서 아프간 전비가 1조 달러라고 말했다. 그러자 미 브라운대 왓슨연구소가 아프간 전비는 2.31조 달러라고 반박했다. 이마저 이미 집행된 금액이며 향후 더 늘어날 것이란 경고까지 더했다. 미 언론과 전문가들이 왓슨연구소의 숫자를 전비로 인용하는 것을 보면 누가 진실을 말했는지는 알 수 있다
2.31조 달러 가운데 가장 큰 비용은 군이 전비 예산 항목으로 지출한 1조550억 달러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금액만을 언급한 것이지만, 전비가 아닌 다른 명목으로 사용된 금액은 4,400억 달러를 넘는다. 이 같은 전비의 차입금 이자를 갚는 데도 5,300억 달러가 사용됐다.
테러와의 전쟁의 또 다른 축인 이라크 전비까지 포함하면 총 비용은 6.4조 달러로 늘어난다. 두 전쟁에 들어간 5.4조 달러와 향후 발생할 참전군인 비용을 최소 1조 달러로 계산한 결과다. 한때 3조 달러 전쟁이라며 비난받던 데서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비용인 3,410억 달러와 비교해도 고비용, 저효율 전쟁이었던 셈이다.
테러와의 전쟁 비용은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이른바 전후 비용인데 무엇보다 향후 40~50년에 걸쳐 발생할 참전군인(베테랑) 의료복지비는 시한폭탄이다.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의 참전군인 459만 명에게 지원할 복지비용은 2050년까지 2.2조~2.5조 달러로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2차대전 참전군인 비용이 종전 40년이 지난 1986년 최대치를 기록한 걸 보면 전망치는 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왓슨연구소는 이처럼 막대한 전후 비용이 장차 미 정부의 디폴트를 가져올 수도 있다며 대책을 서둘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실제로 참전군인 관련 비용이 연방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쟁 이전 2.4%에서 4.9%로 두 배 이상 증가한 상태다.
더 큰 문제는 두 전쟁 비용 가운데 2조 달러 규모의 차입금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이자만 해도 2030년에 원금 수준에 도달하고, 2050년에는 6.5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렇게 되면 실제 전쟁에 쏟아부은 것보다 전후 비용이 더 많아지게 된다. 린다 빌메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이처럼 고비용 구조인 테러와의 전쟁의 특징을 ‘크레디트카드 전쟁’으로 명명했다. 전비를 빌려다 사용한 외상 전쟁이란 얘기다.
미국은 1차대전에서 최근의 걸프전까지 역대 전쟁에선 전비를 세금을 올려 충당했다. 한국전쟁 때 트루먼 대통령은 최고세율을 92%까지 올렸고, 베트남전쟁 기간의 존슨 대통령 역시 최고 세율을 75%로 인상했다. 하지만 부시 정부는 두 차례, 트럼프 정부는 한 차례 세율을 내렸다. 미 국민들은 전쟁 이전보다 오히려 지금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이다. 미 정부는 대신에 모자랄 수밖에 없는 전비를 국채 발행으로 채웠다. 미래 세대에게서 돈을 빌려다 쓴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이 종식된다 해도 국가 회계장부에서 지워지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현실이다.
이같이 마련된 전비는 제대로 쓰였을까. 그 많은 전비는 누가 가져간 것일까. 제대로 사용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아프간만 해도 2조 달러 넘는 미국의 ‘투자’가 성공했다면 지금과 같은 탈출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프간 재건비만 해도 명목상 1,450억 달러가 투입됐지만 아프간인 90%가 하루 2달러 미만의 돈으로 생활하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문제가 커지자 미 의회는 독립된 아프간재건 특별감사관실(SIGAR)을 설치, 전비의 투명한 집행을 감시했다. 하지만 특별감사관실도 미국 군수업체들에 돈이 흘러가는 구조를 막지 못했다.
군수기업 가운데 록히드마틴, 보잉, 제너럴다이내믹, 레이시온, 노스럽그루먼은 ‘프라임스(primes)’로 불린다. 국방 계약자 가운데 5대 방산업체가 진정한 ‘최고’라는 의미다. 프라임스가 2019년 따낸 국방계약은 록히드마틴 471억 달러를 비롯해 1,206억 달러 규모였다.
그러나 프라임스의 실력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이를 보여주는 게 프라임스의 기록적인 주가 상승이다. 2001년 9·11 사태 일주일 뒤 조지 부시 대통령은 테러 세력에 대한 무력사용 수권법에 서명한다.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당시 5대 업체 주식을 1만 달러어치 매수했다면 지금 10만 달러로 불어나 있을 것이다. S&P지수에 투자했을 경우의 4만 달러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익률이다.
기업별로는 록히드마틴 15만6,922달러(배당금 재투자 기준) 노스럽그루먼 15만1,286달러, 보잉 7만7,751달러, 제너럴다이내믹스 7만8,958달러, 레이시온 3만1,244달러의 수익을 기록 중이다. 이들 기업의 주가는 전쟁 초기에 상승이 미미한 측면은 있다. 하지만 9·11 사태 이전 시장 평균치보다 낮았던 5개 기업의 수익률이 50%가량 시장을 상회한 것은 테러와의 전쟁의 수혜자가 이들 군산복합체임을 보여준다.
적어도 프라임스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원하는 것을 얻었고, 실패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진보적인 로버트 라이히 전 미 노동부 장관은 “아프간전의 승자는 국방 계약자들과 그 주주들”이라고 비판한 것도 같은 의미다. 이런 상황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퇴임사에서 경고한 군산복합에 대한 경고를 되살리고 있다. 더구나 5대 방산기업 이사회에는 전역한 고위 장성들이 빠지지 않고 포진해 있다. 군산복합이 자유와 민주적 절차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아이젠하워의 우려는 테러와의 전쟁 때 잠깐 실체를 드러낸 적도 있다. 2013년 정보분석가 에드워드 스노든은 국가안보국(NSA)의 도청프로그램이 빅테크 등의 협력 속에 개인과 사회를 감시하고 있음을 폭로했다.
전쟁 비용은 산술적으로 계산하기 어렵다. 1, 2차 대전을 겪은 프랑스 벨기에 농민들은 아직도 경작 때 발견되는 수백 톤의 폭탄을 매년 제거하고 있다. 전 세계의 분쟁 지역에 묻혀 있는 1억1,000만 개의 지뢰는 하루 20명의 민간인 사상자를 내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에도 비용에 포함시켜야 할 흩어진 진실은 많다. 더구나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만이 치른 것도 아니다. 전투병을 직접 파병한 47개국을 비롯, 직간접적으로 전쟁에 관련된 국가는 80개국에 달했다. 단순히 ‘달러’만이 아니라 전쟁으로 희생된 80만 명과 3,700만 명의 난민이 겪어야 했던 고통까지 계산하면 실제 비용은 미국을 상당 기간 괴롭힐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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