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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95만원 떼여"… 원청인 고창군청은 철저히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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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부당함을 고칠 수 있는 위치에 있어도, 굳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민간위탁 노동자가 중간착취에 신음하는데 갈취 당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심지어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방자치단체, 고창군청 이야기이다.
지난 6월 21, 22일 기자는 전북 고창을 찾았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지난 1월 '중간착취의 지옥도'를 보도하며 간접고용 노동자 100명의 인터뷰를 담았다.
고창군의 하수처리를 하는 서모(54)씨도 그중 한명이었다. 원청인 고창군청에서 엔지니어링 노임단가로 노무비를 주는데도 중간에서 위탁업체가 월 125만 원 정도를 착복하고, 월급은 25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업체 이익 10%와 관리비 5%가 이미 책정돼 있음에도 인건비를 착취한다는 설명이었다. 몇 달이 흘렀고, 고창군은 이 부조리를 고쳤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장을 찾았던 기자는 답답함만 가득 안고 돌아왔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노무비가 노동자의 임금으로 쓰이는지 고창군청은 확인할 의무가 있지만 "업체 경영권을 침해한다"고 하지 않고 있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보다 업체의 이익이 더 중요한 지자체, 그리고 이런 무책임을 제어할 어떤 강제권도 없는 중간착취 제도의 부재. 언제까지 이 답답함이 이어져야 할까.
6월 22일 찾은 전북 고창군 고창읍 하수종말처리장. 정문에는 “업체들만 배불린다! 고창군은 인건비 착복을 방지하라!”는 내용 등을 담은 플래카드 세 개가 걸려 있었다. 약 1만 평에 달하는 하수처리장을 돌아다녀봤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볼 수 없었다.
이곳을 관리하는 수탁업체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노동자 47명은 이곳 또는 면 단위의 다른 하수처리장 30여 곳의 설비실 등에서 기계와 장비를 유지 관리하고, 군내 곳곳에 위치한 맨홀 뚜껑을 열고 오수관의 찌꺼기를 제거하는 중이라고 한다. 매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노동자들은 플래카드를 통해 대신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업체 두 곳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2015년 고창군의 하수처리 사업을 따냈고, 2025년 8월까지 5년간의 재계약에도 성공했다. 재계약 기간(5년)의 총 용역비는 273억여 원. 이 중 노무비로 책정된 금액은 136억4,000여만 원이다. 절반 가까이가 인건비인 셈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이 돈이 온전히 현장 직원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자는 전날인 21일 오후에 업체 노동자들을 미리 만났다. 이들은 연간 1,000만 원 안팎의 임금을 중간착취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노동자는 “매일 직원 두세 명이 당직을 서는데, 업체 측은 시간 외 수당 대신 당직비(약 3만 원)를 지급한다”며 “쉽게 말해서 고창군으로부터 노무비 명목으로 야간ㆍ휴무일 근무비를 받아 놓고, 실제로는 3만 원 당직비로 퉁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돈이 한 달 평균 1인당 95만 원 정도이고, 이를 1년으로 환산하면 대략 1,100만 원이 넘는다.
서씨의 경우는 중급기술자인데도 초급기술자로 대우해 노임단가보다 덜 받고 있어서, 수당까지 더해 총 떼이는 금액이 한 달 125만 원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노동자는 “1인당 착취금액을 1,000만 원으로 계산해도 직원 수(47명)를 곱하면 연간 4억7,000만 원을 착복하는 것”이라며 “업체는 5년(계약기간) 동안 20억 원이 넘는 추가 수익을 올리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자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고창군이 업체에 지급한 노무비 액수가 기간별로 표시돼 있다. 지난해 9~12월분으로 지급된 노무비는 8억5,800여만 원이었다. 직원 47명이 이 기간에 받은 월급을 모두 합한 뒤 이 금액이 8억5,800만 원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비교해보면, 중간착취 금액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간단한 확인을 하지 못했다. 중간착취를 금지하는 법이 없다 보니, 업체는 자료를 내놓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수처리장 사무실에 상주하고 있는 업체 직원들에게 지난해 9~12월 노동자들의 월급 합계액을 물어봤으나, “내부경영 기밀에 해당해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당직비를 꾸준히 인상해왔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했으나, 당직비 책정내역 공개도 거부했다.
이들을 관리 감독해야 하는 위탁기관, 즉 고창군청은 최소한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군민들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9년 정부가 마련한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노무비 전용계좌를 만들고 제대로 지급하는지 파악하도록 돼 있다.
고창군청의 한 부서인 상하수도사업소는 정부 가이드라인은 무시하고 업체의 경영자율성을 침해할 수 없다는 말만 읊조렸다.
엔지니어링 단가를 기준으로 책정한 노무비와 실제 노동자들이 받는 인건비의 차액을 사업소가 확인한 적도 없다. 사업소 관계자는 “노동자들의 보험료 지급 여부를 통해 임금이 지급되고 있는지 아닌지 정도만 파악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보험료 납입액수를 토대로 직원들의 임금을 역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물었다. “그렇게까지 검토해 본 적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업체 측이 노동자들에게 월급으로 50만 원을 지급하든 100만 원을 지급하든 신경 안 쓴다는 뜻이다.
노동자들이 느낄 답답함이 기자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공공하수처리장 입구의 플래카드는 지난해부터 걸려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 1인 시위를 통해서도 수 차례 인건비 착복과 관련한 문제 제기를 해 왔다.
그런데도 사업소 측은 기자에게 “그런 일(중간착취)은 벌어진 적이 없고, 요즘 시대에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없다”고 했다. 임금을 확인해보지도 않으면서 어디서 나온 확신일까. 또 착취를 당했다고 시위까지 했는데, 그건 '가만히 있는 것'이라는 뜻일까.
이 관계자는 다만 “요즘 중간착취 문제가 대두되고 있으니 노무비와 노사협의로 책정된 임금 사이의 차이를 들여다보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물어봤지만 “알려 줄 수 없다"고 했다. 이미 가이드라인에도 임금을 확인하라고 돼 있는데, 대체 무슨 방법을 찾는다는 걸까.
기자는 고창군청에 별도로 민간위탁 사업 노동자가 받는 임금을 확인하는지 문의했다. 고창군청은 “총 16개 민간위탁 사업 모두 책정된 임금 지급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답했다. 믿을 수 없는 답변이다.
각 담당부서로부터 답변을 취합한 군청 울력행정과 관계자는 “상하수도사업소로부터 받은 서면 답변의 ‘책정된 임금 지급 여부 확인’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고, 확인 방법을 묻는 질문에 ‘월 1회 근로자 출근기록부 및 사업자 가입명부 확인’이라고 쓰여 있다”고 답했다. 쉽게 말해서 수탁업체의 직원들이 몇 명이고, 이들이 출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정도를 체크하고 있다는 뜻인데, 이게 어떻게 ‘책정된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일까. 상하수도사업소는 제대로 보고를 하지 않고, 군청 담당부서 역시 사실관계를 확인 안 하는 것이다.
중간착취를 당했다며 1년 넘게 목소리를 높여도 왜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는지 담당자들의 이런 무책임한 자세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상하수도사업소 측은 “정부 가이드라인에 ‘책정된 임금’을 확인하라는 부분은 군청이 지급하는 노무비가 아니라, 업체와의 근로계약 등에 따라 받기로 한 임금이라서 발주청에서는 강제하기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임금 확인도 안 했고, 노무비 전용계좌 개설 등도 의미 없다는 것이다.
정부 가이드라인에 허점이 있는 것은 맞지만, ‘노무비 전용계좌를 개설해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상하수도사업소의 진단도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전용계좌를 만들면 노무비로 지급된 용역비를 다른 용도로 전용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효과가 생긴다.
실제로 고창군청의 상위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전북도청은 총 38개 위탁사업의 노무비 중 직원 임금으로 지급되지 않은 돈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있다.
전북도청은 민간위탁사업에서 직원들 개별 계좌를 일일이 확인해 실제 지급된 인건비를 합산하고, 이를 노무비와 비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잔액이 발생하면 이를 모두 도청으로 반환하도록 하고 있다. 전북도청은 이 같은 절차를 통해 지난해 총 16개 사업장으로부터 노무비를 돌려받았다. 고창군청 상하수도사업소가 참고할만한 내용이다. 정부 가이드라인이 부실해도, 지자체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중간착취를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취재를 진행하는 내내 고창군청 상하수도사업소 측이 기자에게 끊임없이 강조한 말이 있다. 가이드라인은 법적 강제성이 없으니 중앙정부가 상위 법을 만들면 중간착취 근절을 위한 대응이 편해질 것이라는 의미였다. 상위 법(행정사무의 민간위탁에 관한 법률)은 반드시 필요하며, 어느 정도는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충분히 바꿀 권한이 있는 공무원들 입에서 “관련 법이 없어 손을 놓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만큼 참담한 건 없다.
여러 방법을 모색해서 주민이나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 역시 행정이다. 고창군 공공하수처리장 노동자 47명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언제 만들어질지 모르는 상위 법이 아니라 중간착취를 없애겠다는 관련 부서의 의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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