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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사각지대 비극, 왜 되풀이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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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구 논설위원이 노동ㆍ건강ㆍ복지ㆍ교육 등 주요한 사회 이슈의 이면을 심도깊게 취재해 그 쟁점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코너 입니다. 주요 이슈의 주인공과 관련 인물로부터 취재한 이슈에 얽힌 뒷이야기도 소개합니다.
발달장애가 있는 30대 아들을 둔 병든 60대 어머니가 사망한 지 5개월 뒤에야 발견된 서울 서초구 방배동 모자(母子)의 비극은 고질적인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를 드러냈다. 2014년 생활고에 시달리던 송파 세 모녀가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정부는 체납 공과금 같은 개인정보를 사각지대 발굴에 활용할 수 있는 ‘복지사각지대 발굴시스템’을 만들고 긴급복지 지원 요건을 낮추는 등 제도를 손질했지만 유사한 사건은 잊을 만 하면 반복되고 있다. 사회복지사들과 복지 전문가, 빈곤 문제 활동가들은 제도 내 사각지대, 공적보호제도의 높은 신청주의 문턱, 사회복지 인력 부족 등이 복지 사각지대의 비극을 낳는다고 진단한다.
이번 사건이 비극적인 것은 두 모자가 기초생활지원제도라는 공적 보호 체계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몇 달 동안 행정당국으로부터 아무런 지원과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2016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복지사각지대 발굴시스템은 건강보험료, 전기료, 공공주택 임차료 체납 정보 등 33가지 개인정보를 입력해 ‘위기가구’를 예측해 내는 시스템.
그러나 방배동 모자처럼 기초생활수급자라면 읍ㆍ면ㆍ동사무소로 이런 정보가 전달되지 않는다. 시스템이 예측할 수 있는 위기가구는 많지만 실제로 이를 찾아 방문하고 상담할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2016년 20만8,652명, 2018년 36만6,755만명, 올해(10월 현재) 78만 8,763명의 복지사각지대 위기가구 정보를 일선에 전달했다. 5년 사이에 2배 이상 증가했지만, 이 역시 시스템이 실제로 예측한 위기가구의 5분의 1도 안된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에 따르면 이 시스템을 통해서 예측되는 위기대상은 연 450만~500만명 정도다. 아무리 적은 급여를 받더라도 수급자라면 1차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시스템 개발에 참여했던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공지능(AI)이 아무리 정확히 위기가구를 골라내도 발굴할 사람이 없으면 서비스를 할 수 없다는 점은 이 시스템의 한계”라고 말했다. 현장의 사회복지사들도 공적제도의 보호를 받는 대상은 지원의 후순위로 놓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서울 창동 종합사회복지관 사례관리팀 권다혜(27) 사회복지사는 “급여와 소득 기준으로 지원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밖에 없는데 방배동 모자의 경우 수급자라서 보호받는 대상으로 인식했을 것 같다”면서 “아마 우리 기관이라 하더라도 ‘수급자’라는 프레임 때문에 지원 대상에서 빠뜨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선 행정기관에서도 한정된 인력과 예산 때문에 사각지대를 발굴할 때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기초생활수급자 1,852명, 차상위계층 512명, 등록장애인 314명 등을 11명의 사회복지직원이 관리하고 있는 서울 강북 A동 이인회(가명ㆍ50) 복지팀장은 “위기가구를 발굴하려면 한 해는 중장년 남성, 다른 해는 장애인 같은 식으로 타깃을 바꿔가면서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에서 방배동 모자 같은 위기가구가 누락된다는 것이다. 이 팀장은 “방배동 모자 사건이 파악된 것도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노숙자를 위해 봉사한 주민과 공무원, 경찰관들의 네트워크가 작동했기 때문" 이라며 복지 사각지대를 폭넓게 훑기 위해선 민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위기가구의 일부만 일선으로 전달될 뿐만 아니라, 실제 지원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10가구 중 4가구도 안 된다. 관대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복지사각지대 발굴시스템에서 걸러낸 63만3,075명을 위기가구로 예측해 일선 읍면동에서 조사하도록 했는데 이 중 최종적으로 지원을 받은 가구는 22만8,009가구로 36%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기초생활보호, 차상위계층, 긴급보호 등 안정적인 공적보호로까지 연결된 경우는 전체 조사 대상의 10.5%(1만7,674가구)에 불과했다.
일선 공무원들은 위기가구를 실제로 방문해 실태를 조사한 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지원을 하려 해도 재량이 폭넓지 않다는 점도 문제 삼는다. 부정수급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고, 규정을 조금만 위반해도 감사 등 책임 추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 양천구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부정수급 신고가 들어와 수급액 환수조치를 하려고 해당 가정을 찾아가 실제 살림살이를 살펴봤더니 수급자가 돼야 하는 경우였다"면서 “직권으로 부정수급액 환수를 면제시켜주고 싶었지만 면책되지 않아 불가능했다"고 안타까워 했다.
서류상 조건이 안 맞아 수급자에서 탈락하거나 긴급복지 요건에 미달할 경우라도 지원받을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회는 바늘 구멍처럼 좁다. 각 지자체는 공무원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지방생활보장위원회(지생보위)를 열어 필요 시 특례 수급자로 지정하거나 지원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이 제도는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 복지부 지침에 따르면 각 지자체는 매달 1회 이상 회의를 열어야 하지만 지난해 월 1회 미만으로 지생보위를 연 지자체는 서울 강북구, 경기 안성시, 울산 중구 등 49개에 달했다.
복지부는 또 수급권자의 소득 인정액이 기준중위소득 40% 이하이지만 여러 이유로 생계급여나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는 가구에 대해 지생보위가 의무적으로 안건을 심사하도록 하는 ‘취약계층 우선보장’ 지침을 내놨다. 하지만 지난해 이 지침에 따라 수급권을 인정한 가구가 1가구라도 있는 기초단체는 전체(229개)의 절반도 안되는 112개였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제도는 효율성은 깐깐히 따지고 부정수급을 방지하려는 관성은 강력하다”면서 “긴급지원을 받아야 하는 취약계층도 잘못될 경우 환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쓰는 등 정부로부터 의심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고 말했다.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복지 사각지대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은 인력 부족이라는 점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보건복지 인력은 충원됐지만 업무도 늘어나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0월말 현재 전국의 복지대상자(기초생활수급자, 긴급복지, 한부모 가족 등)는 1,153만1,423명이고 읍면동의 복지업무 담당자는 1만1,223명으로 복지담당자 1명이 평균 1,027명을 관리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고용분포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보건사회복지 인력(비시장부문, 2018년 기준)은 7.2%로 주요7개국(G7)의 13.7%, 유럽28개국의 11.1%에 크게 못 미친다. 만성적 인력 부족 상태인 셈이다.
서울의 경우 2015년부터 적극적 복지행정을 펼치기 위해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사업(찾동사업)’을 시작하면서 사정이 좀 나아졌다. 그 해 사회복지 인력 및 간호사 602명을 충원하고 이듬해 1,379명을 새로 뽑았다. 그러나 새 인력의 숙련도도 낮을 뿐더러 업무량도 증가해 기존 복지담당자들 사이에서는 업무가 줄었다는 걸 체감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예컨대 올해 서울지역 동사무소 복지담당자의 경우 수급자와 장애인 관리와 같은 기본 업무 말고도 코로나 사태에 따른 재난지원금 지급, 서울형 기초생활보장제도 확대적용 등 가욋일도 크게 늘어났다.
코로나 유행으로 대면 자체가 어려워지기도 했지만 대상자를 방문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게 일선 사회복지사들의 주장이다. 사회복지업무 경력 11년차인 서울 B동사무소의 한 사회복지사(40)는 “발로 뛰는 복지가 중요하다는 점은 알지만 실제로 현장에 갔다오면 한두 시간, 관련 문서작업에 또 한두 시간이 소요되는 등 반나절이 지나간다”면서 “주민들과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 관계자들과 협업 등을 통해 사례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복지담당자들의 숙련도가 높아지면 사각지대로 추락하는 취약계층을 축소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 A동 이인회 복지팀장은 “돌아가신 방배동 어머니도 주민센터를 찾아 상담하다가 복지지원을 받는데 수치심을 느꼈다고 한다"며 “부끄러운 감정을 갖고 처음으로 복지 서비스를 상담받기 위해 오는 이들을 지원까지 연계해 주려면 경험 많은 복지담당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서울의 경우 찾동사업 때 채용된 복지인력들이 4, 5년 경험이 쌓이면서 숨어 있는 소외계층들을 찾아내는 데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찾동사업을 시작한 2015년 당시 서울시 주민센터 내 사회복지직 인력 45.3%가 근무 연수 2년 미만이었다. 한은희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부연구위원은 “데이터를 통해서 발굴할 수 있는 건 일부분에 불과하다”면서 “재개발지역 등 주거취약지역을 중심으로 공공과 민간의 복지인력들이 조직적으로 사각지대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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