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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 성지? ‘헬’된 할로윈 이태원

입력
2019.11.01 16:30
수정
2019.11.01 16:46

31일 이태원 일대 돌아보니 거리 곳곳 인파로 꽉차

인근 파출소는 비상, 교통 마비에 순찰차도 제때 출동 못해

할로윈 데이였던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가 인파로 가득 차 있다.
할로윈 데이였던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가 인파로 가득 차 있다.

지난 31일 할로윈의 성지로 통하는 서울 이태원은 그야말로 헬(지옥)이었다. 할로윈을 맞아 온 얼굴에 피칠갑 분장을 한 사람, 단순히 할로윈 분위기만 즐기려고 온 사람, 할로인 대목을 맞아 한몫 잡으려는 호객꾼까지 뒤섞이면서 이태원 일대는 평일인데도 새벽 내내 북새통을 이뤘다. 이 일대 도로가 마비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순찰차가 제때 출동하지 못하는 황당한 상황도 벌어졌다.

이태원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부터 할로윈은 시작됐다. 조커와 좀비 분장을 한 무리들이 곳곳에 서 눈에 띄었다. 마치 누가 더 악당 분장을 잘했는지 내기라도 한 것처럼 상당히 공을 들인 모습이었다. 이태원역에서 내리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조커 분장을 한 연인, 인민군 복장을 한 남자, 공룡 분장을 한 가족 등 다양한 분장을 한 이들이 넘쳐났다. 평범한 티셔츠 차림으로 다니는 게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경운기 등장으로 이태원 일대 도로는 극심한 교통 혼잡을 빚었다.
경운기 등장으로 이태원 일대 도로는 극심한 교통 혼잡을 빚었다.

이태원 1번출구 근처 해밀톤 호텔 뒤편 거리 한쪽엔 특수분장을 해주는 좌판대 50여개가 줄지어 있었다. 조커는 2만5,000원, 뱀파이어처럼 분장하는 덴 3만원을 받았다. 꽤 비싼 가격인데도 좌판대마다 특수분장을 하려는 이들로 붐볐다. 오후 9시쯤 되자 이태원의 할로윈은 절정에 이르렀다. 이태원의 좁은 거리마다 인파로 가득 차 앞으로 걸어가는 것 자체가 버거울 정도였다.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입구와 끝 사이는 대략 200미터 남짓 거리인데, 이 거리를 걷는데 30분도 넘게 걸렸다. 한 공간에 하도 많은 사람이 몰려 그런지 이즈음부터 스마트폰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았다.

할로윈 데이였던 31일 이태원 일대 풍경.
할로윈 데이였던 31일 이태원 일대 풍경.

좁은 거리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인근 도로로 쏟아지면서 저녁부턴 이 일대 교통도 마비됐다. 교통 혼잡은 오후 11시쯤 사람 둘을 태운 경운기가 등장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운기가 교통에 영향을 준 건 확실한데 처벌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우리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인근 이태원파출소도 비상이었다. 파출소엔 10분에 한번씩 도난, 분실 신고가 들어왔고 단순 주취 폭행 사건 접수도 끊이질 않았다. 그럼에도 인근 도로가 꽉 막힌 바람에 경찰이 신고가 들어와도 순찰차를 제때 타고 가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일부 시민은 출동하는 경찰이 할로윈 복장을 한 줄 알고 막아서는 이도 있었다.

할로윈 열기는 새벽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꽉 막힌 도로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시민들이 너도나도 택시를 부르면서 새벽 내내 택시 전쟁이 벌어졌다.

경찰이 인파를 헤치며 걸어가고 있다.
경찰이 인파를 헤치며 걸어가고 있다.

이런 할로윈 열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이날 이태원을 찾은 대학생 김모씨는 “한국서도 할로윈을 즐길 수 있어 좋긴 한데 아무 곳에서나 침을 뱉거나 술을 마시는 등 축제 매너가 없는 이들도 많아 눈살이 찌푸려졌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할로윈 축제는 긍정과 우려 두 측면이 있다”며 “다른 측면에서 보면 할로윈 축제가 커지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축제의 창구가 없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사진ㆍ글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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